정서적 교감
정서적 교감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1.10.0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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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갓집 제삿날, 며느리는 보이지 않고 네 명의 남자와 안주인이 보인다. 치매 초기의 안주인은 서성거릴 뿐 실상은 남자들이 상을 차리느라 분주하다. 제주는 한복을 갖춰 입고 가장 권위적인 모습으로 제를 올린다. 그 모습만 빼면 종갓집 제사풍경도 많이 변했다.

한기연 수필가
한기연 수필가

바쁜 며느리들의 불참과 거리낌없이 주방일을 하는 아들과 손자의 모습이 편해 보인다.오랫동안 평일 아침마다 사람사는 이야기가 담긴 TV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이번주는 52년 결혼 생활을 하면서 4년 전 치매 걸린 아내를 돌보는 남편의 사랑이야기이다.

아내가 치매가 걸린 후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남편은 변했다. 제사 지내는 장면에서도 그 모습을 엿볼수 있었다.준비과정부터 뒷정리까지도 그러했다, 제사가 끝난 후 생선이 빠졌음을 알게 됐는데, 그 이유가 고양이가 먼저 손을 댔기 때문이라는 데도 화를 내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담벼락 아래에 고양이 밥그릇이 정갈하게 놓여 있고 다섯 마리의 고양이가 맛있게 먹는다. 아내를 위해 고양이를 기르기 시작했다는 남편의 말이다. 치매 걸린 후 성격이 변한 아내가 남편보다 고양이와 말을 더 많이 하고 웃어준다며 정서에 좋을 것 같아서 기르기 시작했단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나이 든 여인이 손을 내밀면 고양이가 손을 내밀면서 티격태격 장난치는 모습에 따뜻함이 전해진다.두 아들이 외지로 나가고 부부만 사는 집은 조용하다. 그렇다고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울 만큼 부지런하지도 않다. 그러던 중, 지인이 물고기를 몇 마리 분양해줬다.

집에 있는 빈 유리그릇에 물을 채우고 돌멩이와 식물을 넣어 어항을 만들었다. 햇볕 좋은 발코니쪽에 두고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또 다른 즐거움이 되었다.한 사람이 일정하게 밥을 주는 것이 좋다는 생각으로 남편이 그 일을 담당했다.얼마 후 물고기는 새끼를 낳았다. 작은 생명이 꿈틀거리는 모습은 신기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새끼 물고기는 얼마 못 가 죽었다.며칠 전, 물고기가 새끼를 낳았는데 이번엔 분리해 놓았다. 어미가 새끼를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작은 어항으로 옮겼다. 두 배의 기쁨이 생겼다. 끊임없이 누군가 소통하고 싶어 하는 마음의 대상이 물고기가 되었다.

정서적 교감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물고기와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일방적으로 내말을 쏟아 내고 있을 뿐이니 말이다. 계산하지 않고 속엣말을 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어항속에 손가락을 넣으면 애무하듯 달려드는 그 가벼운 느낌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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