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귀를 열고
두 개의 귀를 열고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1.09.10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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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연 수필가.
한기연 수필가.

지난주 집 가까이로 옮겨 온 오일장에 장 구경을 하러 갔다. 집 근처에 공원이 있어서 해마다 축제가 열리면 야시장이 들어서던 곳이다. 며칠 동안 축제가 벌어지면 흥겨운 품바 마당 앞에서 남편과 둘이 끼와 흥이 넘치는 그들의 공연을 즐겨 봤다. 남편과 둘이 장터를 돌아다니니 야시장을 둘러보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저녁 안주로 족발을 사면서 사장님께 이쪽으로 옮긴 후 어떤지 이것저것 여쭤봤다. 말이 길어지자 남편이 말을 끊고 손을 잡아끌었다. 생선이 펼쳐진 좌판대에 멈췄다. 청년 두 명이 생선을 팔고 있었다. 이리저리 둘러 보다가 키 작은 청년에게 생선 가격을 물어 봤다. 또박또박 유창하게 말을 하지만 단번에 외국인임을 알았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직업 정신이 발현되어 이것 저것 물었다. 그런데 내 질문이 불편했는지 대답을 피하고 생선 손질을 했다. 생선값을 내고 길을 걸으며 남편은 외국인인 줄 몰랐다고 말하며 쓴소리를 했다. 그전에는 몰랐는데 내가 지나치게 말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어와 방과 후 수업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남 앞에서 말하는 일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이제는 경력이 쌓이면서 교수 방법도 고민하고 나름대로 전달력 있는 수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의 내 모습을 돌이켜 보면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많다. 그건 모두 내가 뱉은 말로 인해 벌어졌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보다는 내가 가진 지식과 재능을 거침없는 말로 쏟아내며 나를 드러냈다. 상대방의 감정과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기 자랑을 하다보니 실수가 잦았다.

자꾸만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심이 생기나 보다. '나, 이런 사람이에요' 하며 과시하려는 버릇이 생겼다. 일상생활 중에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스크에 가려진 입은 벌써 말할 준비를 끝내고 타이밍을 보고 있다.

집에 돌아와 그 순간을 생각하면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이 대부분이라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조바심을 내는 모습이 초라해 보인다. 사람의 귀가 두 개인 것은 그만큼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 개의 입으로는 충분히 생각하고 신중하게 말을 해야 한다. 말을 아끼고 귀를 열고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유태인 속담에 나이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말이 있다. 이제라도 말에 추를 달아 무겁게 누르고 남의 말을 천천히 들어야겠다. 오늘 하루도 낮 뜨거운 순간이 스치듯 지나간다. 보슬 보슬 내리는 가을비에 가볍게 던진 부끄러운 말도 남김없이 씻겨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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