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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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1.02.18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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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선 수필가
이재선 수필가

온라인 수업을 마무리하며 점심에 무엇을 먹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노트북이랑 학습도구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점심을 같이 먹자는 전화로 생각하고 얼른 받았다. 아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얼른 내려오란다.

이유를 묻자 보면 얘기한다며 끊는다. 궁금한 마음에 정리하던 것들을 놔두고 뛰어 내려갔다. 아들은 울먹이며 속이 안 좋아 병원에 가서 내시경을 했더니 위장 출혈이라고 상급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했단다. 한 시간은 가야 되는 병원이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다.

응급실은 어디든 한가한 곳이 없다. 접수를 하고 급한 마음에 재촉을 해 보지만 검사결과가 나와야하고 내시경 검사실이 비여야만 된다는 설명이다. 응급실 온지 두 시간이 지나자 초조해졌다.

아들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자 쓸어 질 위험이 있다며 변기를 주었다.커튼 뒤에 서있는데 다급히 불러 커튼을 여는 순간 난 비명을 질렀다. 그 많은 피가 어디서 나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의료진도 놀래서 바로 수술실로 옮겨지고 난 진정할 수가 없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보호자를 부르는 소리에 뛰어 들어갔다. 십이지장출혈이 심해서 일단 응급으로 진행했단다. 경과를 본 다음 다시 내시경으로 출혈여부를 보고 처치를 결정한다는 의사의 설명이었다.

아들을 병실에 뉘여 놓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병실 복도로 나왔다. 창밖으로 보이는 불빛이 슬퍼 보여 눈물이 흘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다니다 군대를 다녀왔다. 직장생활 하는 동안 혼자 잘 살고 있다고 해서 그런 줄만 알았다.

술 담배도 안 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아들이 늘 믿음직했다. 그런데 식습관이 문제였다. 살 뺀다고 거의 굶다시피 하고 좀 빠지면 폭식을 하는 게 화를 불러왔다. 얼마 전 친구 아들이 사고를 당해서 중환자실에 한동안 있었다.

친구의 고통을 함께하지 못해서 애가 탔다. 그렇지만 남이다 보니 먹을 것 먹고 웃을 일 있으면 웃고 지냈다. 그런데 내가 당하고 보니 뼛속까지 그 마음을 이해하고 남았다. 아들이야 병명을 알았으니 시간이 지나면 나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친구는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몰라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하다.

결혼 전 병원에 근무하면서 나름대로 환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보듬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동정심만 있었던 것 같다. 응급실에 근무하다보면 피를 쏟는 환자들도 많이 보게 된다. 그들은 이렇게 피를 쏟아내는 내 아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절실한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일 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지만 내 주변 얘기는 아니었다.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바라보며 언젠가는 꺼지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 확진자가 나왔다는 안전문자를 받고 보니 마음이 달라졌다.

함부로 나가기도 두렵고 친구 집에 놀러가는 것도 망설여졌다. 피부에 닿는 체감온도가 달랐다. 확진 환자가 많은 지방 사람들을 진정으로 걱정하게 되었다. 나도 내 친구도 아니 세계사람 모두가 이제는 아픔을 나누는 체감온도가 같아졌다. 잠든 아들 방문을 닫고 나오며 하루속히 이 모든 것들이 악몽이길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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