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1.02.03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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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순 수필가.
이명순 수필가.

기약없이 일을 쉬는 중이다. 일할 때는 며칠간의 휴가가 얼마나 달콤한 휴식인가. 하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 휴식은 마냥 즐거울 수 없는 일이다.주어진 시간은 많아도 가고 싶은 곳에 갈 수도 없으니 답답하다.

자유로운 듯 자유롭지 못한 생활이 이어지니 지루하기도 하고 평범했던 일상이 얼마나 행복한 것이었는지 새삼 느낀다. 지난해 문학회 소모임에서 페미니즘 작품 읽기와 영화보기를 한 적이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지인들과 만나 정해진 책을 읽고 페미니즘 영화를 보며 토론할 기회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나는 사정상 영과관에 갈 수 없었다. 영화보기를 좋아하기에 미련이 남았었는데 무료함도 달랠겸 텔레비전 채널을 움직이다가 우연히 <히든 피겨스>라는 몇 년전 영화를 발견하고 보게 되었다.

<히든 피겨스>는 '숨겨진 숫자', '숨겨진 인물' 등의 뜻인데 영화에서는 '숨은 영웅들'이란 중의적인 의미도 있다고 한다. 이 영화는 1960년대 인정 차별이 유독 심했던 미국 버지니아 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시절에는 인간이 달에 가는 것보다 흑인이 백인 학교에 가는 게 더 힘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인종차별이 유독 심했던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NASA에 근무했던 세 여성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천부적인 수학 능력을 가진 흑인 여성으로 미국의 우주 항공 발전에 기여한 캐서린 존슨, NASA에 근무하는 흑인 여성들의 리더이자 프로그래머인 도로시 본, 그리고 NASA 최초로 흑인 여성 엔지니어가 된 메리 잭슨이 주인공인데 이 세 여성들은 미국 역사에 기록된 실존 인물이기도 하다.

같은 일을 하면서 여자라서 중요한 회의에도 참석할 수 없었고,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며 같이 마시는 커피포트를 사용할 수도 없고, 흑인이라는 이유로 800m 떨어진 별도의 전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며, 버스에서도 유색인종은 뒷자리에만 앉아야 했던 불공평한 세상에서 편견과 맞서 싸우며 정면 돌파하는 세 명의 여성들은 결국 성공했고 그들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영화 포스터에는 '천재성에는 인종이 없고, 강인함에는 남녀가 없으며, 용기에는 한계가 없다!'란 글귀가 있다. 그녀들은 불가능 같았던 개개인의 꿈을 이루며 세상을 변하게 했다. 미국은 그녀들 덕분에 최초로 우주 비행사를 보낼 수 있었고 나중에 달에도 갈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 해리슨 부장은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 팻말을 망치로 부수며 NASA에서는 모든 사람이 같은 색깔의 소변을 본다고 말하는데 당연한 그 말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았는지 모른다. 그 공간에서 평등의 출발이었다.

해가 바뀌어도 세상은 여전히 혼돈속이다.모두가 기다리던 백신 접종이 시작된다는 반가운 뉴스를 보며 이 시대를 위해 애쓰는 숨은 영웅들께도 감사하고 싶다. 우리나라 질병관리청을 이끌어 가는 분도 여성이다. 격무에 시달리며 제대로 휴식의 시간도 갖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 영웅들이 있기에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고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감염수칙을 지키지 않는 많은 사람들도 있지만 지난 일년간 묵묵히 참고 견디는 우리 국민들도 모두 숨은 영웅들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계속 움직이는 결승선에 도달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기에 가능했듯이 이제 우리는 희망을 향해 다가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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