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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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1.01.2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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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연 수필가.
한기연 수필가.

지난 연말부터 심신이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됐다. 시간이 많다보니 게을러지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이 엄습했다. 아직은 쉽게 잊히지 않는 겨울 끄트머리의 기억때문인지도 모른다.

벌써 햇수로는 2년 전 일이다. 12월 연말 친척모임으로 영월에 도착해서 저녁나절 비보를 접했다. 그 밤을 힘들게 보내고 그 다음 날 아침에 눈길을 달려 충주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중학시절부터 친하게 지내고 오십이 넘은 지금까지 연을 맺고 있는 친구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암 투병 1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무것도 몰랐던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아빠의 죽음과는 사뭇 달랐다.친구가 내 곁을 떠났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가장 큰 슬픔이었고, 믿을 수 없었다. 영정 사진 속 친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밝게 웃고 있었다.

투병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암투병중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씩씩한 모습을 보여 주고 몸이 조금 괜찮아졌을 때는 기타를 배우러 다니기도 했다. 그래서 금방 털고 일어날 줄 알았다. 그런데 마지막에 여러 번 응급실에 가고 서울 병원으로 가더니 내려오지 않았다.

그 뒤로 몇 개월은 집 밖으로 돌아 다녔다.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우울감이 지속됐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 이기적이게도 욕심의 그릇을 채우기도 하고 비우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벌써 1주기가 다가 오면서 공허한 마음이 커졌다.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함께 했던 시간과 공간이 슬픔의 더께로 내려 앉아 무거웠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다 지나쳤던 친구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밥 한번 먹자'고 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해서 충주로 향했다.

갈 때부터 다짐했던 대로 씩씩하게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맛있게 밥을 먹었다. 밥 한번 사준다고 말만 하다가 처음으로 밥을 같이 먹었다. 1년에 한 번이라도 만나자는 기약을 한 후 나는 친구가 있는 납골당으로 갔다. 굽이 굽이 고갯길 끝에서 만난 친구는 유리문 아파트 안에 사랑하는 가족사진과 함께였다.

담담히 얼굴을 마주하고 보니 눈물이 쏟아졌다. '보고싶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었다. 아직도 지우지 못한 휴대폰 속 친구에게 가끔 '보고싶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다. 하늘로 보내는 메모를 한 장 남기고 돌아섰다.

12월이 되면 장례식장에서 먹었던 친구의 마지막 밥상이 생각난다. 겨울, 혹독한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기억하고 싶다. 눈물을 삼키며 목구멍으로 밀어 넣던 밥 한 숟갈이 그리움으로 차오르던 마지막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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