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0.09.16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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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연 수필가.
한기연 수필가.

비가 내린다. 어둑어둑한 저녁길에 차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가슴을 뛰게 한다. 저마다 다른 상념에 잠긴 세 모자가 떠나는 길이다. 일요일 저녁 공짜 호텔숙박권이 생겨서 갑자기 이뤄진 강릉 여행에 날씨는 무관했다.

혼자 남겨진 남편은 미리 알았더라면 휴가를 냈을 거라며 투덜거렸다.늦은 밤, 호텔에 짐을 부리고 두 아들은 야식을 사 오겠다며 나갔다. 방도 비좁고 창 밖의 야경이 볼 만하지도 않았지만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이 특별했다.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라는 진리와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는 자기 위안을 삼으며 치킨과 피자와 합이 맞는 맥주로 건배를 한다. 예기치 않은 여행을 함께 한 내게는 의도한 바가 있다. 두 아들의 속내를 듣고 싶었다.

며칠 전, 작은 패션회사에서 두 달 정도 수습으로 일하다 그만두고 온 큰 아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제대 후 복학한 학교는 다니지도 못한 채 1학기를 끝낸 둘째 아들과도 진중한 대화를 나눠보지 못했다.

이 참에 나름대로 겪고 있는 걱정과 고민을 들어 주리라 생각하고 떠난 길이다. 큰 아들은 일은 힘들지만 재밌는데 직속 상관의 괴롭힘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스트레스로 인해 고질병인 귓병이 도져 염증이 생겼다.

모든 관계에서 사람이 가장 힘들다고 위로하며 '잘했다'고 응원했다.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덧붙인 말은 고백컨대 나를 향한 말이었다.둘째 아들은 제대 후 복학에 대한 고민을 했었다.

공부하기를 싫어 했던지라 다시 어려운 공부를 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컸나 보다. 어찌됐든 대학은 졸업하자는 부모의 말을 따라 복학을 했는데,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으면서 갈등을 했다.그래도 시험보러 2주간 영주로 내려가서 친구들과 함께 하더니 진로에 대한 신념이 생겼는지 또랑또랑한 눈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신뢰가 깊어졌다. 월요일 아침, 안목해변에 있는 카페거리로 향했다. 보슬비가 내리는 이른 시간인데도 제법 관광객이 있었다. 전부터 꼭 와보고 싶었던 카페 거리를 탐색하고 해변을 걸었다.

지인의 추천으로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카페로 향했다. 검색을 해보니 커피맛이 일품이며 대기를 해야 한다는 정보가 많았다. 평일이고 궂은 날씨에 '사람이 있을까?'하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카페이름처럼 '커피공장'으로 규모도 2층으로 클 뿐 아니라 번호표를 뽑고 줄을 서서 한 시간여 만에 주문한 메뉴를 받았다. 기다림 끝의 달달함이 이런 것일까? 빵 한 조각과 커피 한 모금에 행복해 지는 순간을 두 아들과 함께하니 더 좋다. 다시 한번 음미하며 '천천히, 천천히' 기다릴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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