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좋아하는 남자
꽃을 좋아하는 남자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0.06.24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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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순 수필가.
이명순 수필가.

아파트 단지 담장에 빨간 덩굴장미가 피기 시작했다. 초록의 무성한 잎들 사이로 수줍게 한 두 송이씩 얼굴을 내밀더니 이제는 꽃송이가 풍성해졌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얀 찔레나무도 꽃을 피운다. 덩굴장미 꽃이 만발하면 지나가던 행인들도 차를 멈추고 화려한 오월의 장미에 이끌려 사진을 찍기도 한다. 화단에는 보라색 팬지꽃이 올망졸망 예쁘게 피었다. 한 두 송이가 아닌 여러 송이가 모여 있으니 더 예쁘다.

오래된 우리 아파트는 건물은 낡고 단지는 좁지만 깨끗하게 관리되는 편이다. 이것 저것 꽃들도 많고 조금 있으면 앵두나무와 보리수 나무에 빨간 열매들이 조롱조롱 달려 있는 풍경도 볼 수 있다. 이렇게 화사한 풍경을 볼 수 있는 이유는 경비 아저씨의 손길이 수없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유난히 꽃을 좋아하는 아저씨는 팬지꽃도 씨를 받아 매년 뿌리고, 국화도 삼목을 하여 뿌리를 내리게 한 후 옮겨 심어 초겨울 무서리가 내릴 때 까지 국화꽃을 볼 수 있게 해준다.

팔순이 다 되어 가는 경비 아저씨는 고령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해서 쓰레기장도 깨끗하게 관리한다. 경비라는 맡은 바 직업에 충실한 책임감도 있고,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입주민이기에 애착을 갖고 더 열심히 하신다. 오며 가며 만날 때 마다 덕분에 예쁜 꽃들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아저씨는 고맙다 하며 다른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하신다. 말을 안 할 뿐이지 눈에 보이는 것을 어찌 외면하겠나.

얼마 전 아파트 13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한 어느 경비원의 뉴스가 전해졌다. 입주민의 갑질에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우울한 소식을 들으며 가뜩이나 코로나로 인해 너나없이 힘든 시기라 더 답답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사회적으로 갑을 관계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 수직적인 관계라도 서로 상생하면 좋겠지만 한쪽에서 일방적인 권력을 악용해 폭력까지 행사한다면 사회적 질서는 존재하기 어렵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겠지만 그 경비원이 아파트 13층까지 올라갔다가 밑으로 뛰어내릴 시간 동안 얼마나 고뇌했을까.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할 정도의 절박한 상황으로 몰지 않고 상호간에 원만히 해결되면 좋았을 텐데 안타까웠다. 우리 아파트 담장의 덩굴장미도 때가 되면 저절로 피는 것은 아니다. 늦가을이면 경비 아저씨는 매년 장미 가지를 잘라낸다. 쓸데없는 가지는 잘라내고 죽어 가는 가지도 쳐낸다.

병충해가 있는 가지도 잘라내야 한다. 덩굴이 옆으로 번져 다음 해 더 많은 꽃을 볼 수 있도록 늘어진 가지들을 철망에 묶어 주기도 한다. 봄이 되면 꽃을 피우지 못할 헛가지를 자르고 웃자란 가지들도 쳐내며 말끔하게 정리를 한다. 쓸데없는 헛가지들을 쳐내면 새순이 더 많이 돋아서 꽃도 풍성하게 핀다고 한다. 누구 한 명 도와주지 않고 꼭 해야만 하는 일도 아니다. 대충 대충 잘라낸들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경비 아저씨의 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월부터 유월까지 이곳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은 빨간 덩굴 장미꽃이 아름다운 담장을 선물로 받는다. 불청객 코로나 바이러스로 올 봄은 누구나 힘들었다. 하지만 오월의 초록은 눈부시다. 불청객이 사라지고 경비 아저씨의 땀방울 덕분에 오월을 장미 꽃향기와 함께 하니 소소하게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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