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푸른 초원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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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0.05.2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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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연 수필가.
한기연 수필가.

어둠이 내려 앉은 주변이 고요하다. 남편과 둘만 있는 침묵의 공간이 무색할정도로 개구리 울음소리가 사방에 가득하다.

논 가운데에서 듣는 개구리 소리가 얼마만이던가? 남편의 성화에 저녁거리를 대충 챙겨서 이 곳으로 오길 잘했다.

작년 초, 남편은 다섯 마지기의 논 중 한 마지기 정도의 터를 닦아서 농막을 지었다. 결혼하고 아이들의 어릴적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시부모님 산소가 있는 터전에서 시골집을 팔고 읍내 아파트에 정착했다.

아파트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했으며 편리하고 깨끗했다. 그러나 남편은 늘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나보다. 허름했지만 시골집을 팔고나니 형제들이 성묘나 금초를 하러 와도 쉴 곳이 마땅치 않았다.

남편은 여러 가지 고민 끝에 내겐 통보만 하고 중고 컨테이너를 사와서 농막을 지었다. 두 달 정도 걸려서 논 가운데 민트색으로 예쁜 집이 생겼다.

그 뒤로도 남편은 밭을 만들고, 직접 농막을 꾸미느라 바빴고 퇴근 후 일상이 활기찼다. 무료한 일상을 술로 보내는 것보다는 보기 좋았다.

올해 코로나로 수업이 없어지면서 그 곳을 자주 찾게 되었다. 쉬는 날이 길어지면서 무기력과 불면증이 생겼다.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였기에 혼자 와서 차 한잔 마시곤 했다.

덩그마니 놓여 있는 공간에서 하늘과 연초록빛 자연을 바라보며 바람을 살갗으로 느꼈다. 조금씩 마음을 다스리고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군대를 갔다 온 후 2학년으로 복학한 둘째 아들도 친구와 함께 농막에서 강의를 듣거나 모임 장소로 아지트가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흙이 내어 주는 것에 대한 소중함과 자연속에서 편안함을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텃밭에 자라는 유기농 쌈채소를 맛있게 먹을 줄 알게 됐고, 남편이 애써 키운 고추를 버리지 않으려고 저장을 한다. 젊을 적 나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아파트든 농막이든 남진의 '님과 함께' 노랫말처럼 남은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가 있기에 따뜻한 쉼터가 되어 주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힘든 시기이지만 소소한 일상을 남편과 함께 하는 시간이 좋다.

언제 이렇게 깜깜한 어둠속에서 개구리소리를 빛처럼 들을 수 있을까? 근처 사찰에서 달아 둔 연등이 보인다. 코로나로 인해 윤달에 사월초파일을 지내게 되었다.

연등에 점화된 불빛이 오르막길을 밝히고 있다. 그림 같은 집을 짓고도 함께 살 사람이 없다면 어떨까? 생각이 다르고 의견 충돌로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잘 해 왔다. 어둠속에서 저 멀리 연등 불빛처럼 따사로운 기운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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