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 사
축 사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0.04.02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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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선 수필가.
이재선 수필가.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아파트에 살다보니 밥을 안치고 나면 뭘 해먹으면 냄새가 조금나면서 맛있는 요리를 할까 결정해야할 때가 고민이다. 그래도 오늘은 냄새를 생각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청국장에 고등어구이를 택했다.

육수를 내고 청국장에 들어갈 채소나 양념을 준비했다. 밖에서 들어 올 사람을 생각해 후드는 물론이며 공기청정기에 창문까지 열어놓고 잠시 동안 추위를 참아 보기로 했다. 고등어를 구우려고 후라이팬을 꺼내다 보니 지난 번 어느 정기총회서 선물로 받아 온 양면 팬이 보여서 꺼냈다. 

선배언니의 말대로 기름을 두르지 않고 종이 호일을 깔고 약 불에 올려놓았다. 뒷사람에게 밀려서 압사할 뻔 하며 타온 양면 팬을 보니 웃음이 난다. 조합원이 천명이상 참석한 총회는 회의가 끝나야 선물을 주었다. 대부분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많아서 총회가 길어지니 답답한 나머지 미리 줄을 서기 시작했다.

상단에서는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길어진 이유를 생각해 보니 축사가 문제였다. 참석한 기관장들의 축사가 줄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축사를 하는 것은 좋은 데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고 앞 사람과의 토시도 틀리지 않은 축사는 객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축사얘기를 하다 보니 지난해 딸 결혼할 때가 떠오른다. 주례 없는 결혼식이라서 축사를 누가 하느냐가 중요했다. 의논 끝에  남편이 하기로 결정을 했지만 마이크만 잡으면 놓을 줄 모르는 성격을 알기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 때 어느 교장선생님의 퇴임식이 떠올라 조심스럽게 말은 꺼냈다.

그 교장선생님은 수 십 년 교직생활을 한마디로 풀어낼 수 없어 살면서 때론 술안주로 언제는 밑반찬으로 내놓겠다고 했다. 군대 다녀온 남자들이 평생 술안주로 써먹듯이 그러겠노라며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말로 퇴임사를 끝냈다. 많은 이들의 박수 속에 짧고 깔끔한 축사는 오래도록 기억 되였다.

남편은 그 얘기를 듣고 축사를 쓰고 또 쓰고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내가 대신 써준대도 묵묵부답인걸 보니 본인이 쓰고 싶은 모양인 것 같았다. 유달리 딸을 사랑한 아빠의 이야기가 몹시 궁금했다. 머뭇거리며 내민 축사 내용을 보니 흡족했다. 돈보다 건강과 사랑을 택해야 된다는 간결한 내용이었다. 너무 평범해서 뭐 저런 말을 하나 하겠지만, 가정을 이루고 세상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며 가장 지키기 어려운 부분이기도하다.

축사는 말 그대로 어느 행사를 축하하는 인사 글이다. 그런데 간혹 그 행사와 맞지 않는 내용과 끝없이 이어지는 본인의 경험담까지 추가하는 축사는 듣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난감하다. 축사가 오래 기억되려면 그 행사에 맞는 중요부분만 짧게 요약하면 된다.

고등어가 노릇노릇 맛나게 구워졌다. 그런데 갖은 재료로 끓인 청국장은, 별 재료 없이 끓인 엄마 맛보다 너무 맛이 없었다. 요리의 본질을 생각지 않고 많은 재료를 넣었기 때문이다. 요리도 그렇듯 축사도 어울리지 않게 길고 지루하면 진정한 축사가 아니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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