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소음
백색소음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0.01.0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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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연 수필가.
한기연 수필가.

굽은 길 따라 계곡과 산줄기가 희미하게 보인다. 40년 지기 친구와 단 둘이 여행지로 택한 곳이다. 금요일 오후 일정이 끝난 후라 출발이 늦었다. 짧은 여행은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계획없이 순식간에 실행되었다. 친한 친구이면서도 처음 있는 일이다.

가까운 여행지로 단양을 정하고 숙소는 인터넷으로 떠나는 날 예약했다. 숙소를 목적지로 오다보니 선암계곡이었다. 방 안은 주인장의 배려로 따뜻했다. 계곡을 향해 있는 창문을 여니 넓은 테라스와 그 아래로 이어져 있는 계단이 보였다. 이른 저녁인데도 산중이라 어둠이 깊었다.

고요한 어둠속에서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들렸다. 친구와 나란히 서서 말없이 밤하늘을 보기도 하고, 겨울산과 계곡을 바라보기도 했다. 마음이 가라앉았다. 다음 날 아침, 향 좋은 커피를 들고 계단으로 이어진 계곡 아래로 내려갔다.

첩첩산중이란 말이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크고 작은 돌이 흐르는 물속에서 더 둥글고 단단해진 듯 보였다. 작년부터 불면증으로 숙면을 취할 수 없었는데 어제는 단잠을 잤다.
친구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물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편하다고 했더니 이런 게 '백색소음'이란다.

서울대 도서관에서 책장을 넘기는 소리도 그에 속한다며 덧붙인다. 소음이란 듣는 사람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소리이다. 그런데 자연이 주는 소리는 그 소리에서 안정감을 느껴서 건강에 좋은 소리라고 한다.

백색소음은 생활 주변의 자연소리와 유사하기에 일에 방해되는 일이 거의 없으며, 오히려 거슬리는 주변 소음을 덮어준다. 백색소음에는 진공청소기나 사무실의 공기정화장치 그리고 파도소리, 빗소리, 폭포소리 등이 포함이 되어 있다.

예민한 성격의 남편은 유독 빗소리를 좋아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그 소리에서 안정감을 느꼈나 보다.책을 좋아하는 친구는 두꺼운 책을 가져와 읽었다. 나는 그 옆에서 지인의 시집 한 권을 읽었다. 함께 여행와서 각자의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친구가 읽고 있는 책이 궁금해 물었더니 서평처럼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책을 읽고 있는 것처럼 선명한 해석이 마음에 들었다. 친구가 추천하는 책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다른 이에게서 이런 얘기를 듣는다면 잘난체로 여겨져서 심기가 불편했을텐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게 신기했다.

친구의 말투에 평소의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나 백색음의 효과를 내고 있나보다. 깎아지른 듯한 산과 계곡을 뒤로 하고 오는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위로가 되어 준 자연의 소리와 더불어 나도 누군가에게 백색음으로 다가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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