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부부가 사는 법
어느 부부가 사는 법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19.12.1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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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선 수필가.
이재선 수필가.

친구네 농장엘 갔다. 친구 남편은 직장을 다니면서 아침과 저녁 그리고 주말에 밭농사를 짓는다. 농막을 지어놓고 바쁠 때는 농막에서 자기도 한다고 했다. 기대감 없이 따라간 농장은 생각 외로 넓었고, 수십 가지도 넘는 작물들이 심겨져 있었다.

줄 맞추어 골골이 심겨진 작물들은 예쁜 정원을 연상케 했다. 하늘의 태양과 바람이 모두 이 밭으로 쏟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고구마의 파릇하면서도 연보라색이 나는 줄기는 이다음 수확할 고구마를 생각하니 더없이 예뻐 보였다.

참외는 어른 손바닥 크기의 잎사귀 뒤에서 수줍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잎을 따먹기 위해 심은 들깨도 튼실하게 자라고 있고, 쌈 채소도 종류별로 심겨져 있었다. 자주색 나는 상추, 잎이 보드라운 파란색 상추, 잎이 아삭아삭한 배추상추에다, 치커리하며 이름을 모르는 쌈 채들도 많았다.

이 쌈 채소들로 점심상이 차려질 것을 생각하니 군침이 돌았다. 밭 곳곳을 시찰 나온 사람처럼 돌아다녔다. 따가운 햇살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밭고랑 사이사이를 걸어 다녔다. 친구는 더운데 들어오라고 성화다. 돌아다니다 보니 또 내가 좋아하는 가지가 자주색 꽃을 피우고 있었다.

오이도 줄기를 따라 노란 꽃이 햇살을 받아 어느 꽃보다 예뻤다. 농작물 한포기포기마다 친구 부부의 정성과 사랑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농장 안에는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닭장도 있었다. 산 밑에 있는 농장에 산짐승들이 해코지를 할까봐 땅에다 지은 게 아니라 땅에서 간격을 두고 이층집처럼 지었다.

정말 안전하게 만들어 놓은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 내게 과찬이라며  친구는 수줍게 웃는다. 요소요소에 쓰임새 있게 만들어 놓은 농막은 주인의 성격을 짐작 게 했다. 아내를 배려해 씽크대와 냉장고, 화장실까지 갖추어 놓은, 말만 농막이지 일반 주택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점심 밥상은 생각대로 근사했다. 종류별로 따온 쌈 채소들과 작년에 이 밭에서 수확한 배추로 담근 김장김치와 맛깔스런 집 된장까지 푸짐한 밥상이다. 시원한 그늘에 앉아서 부부의 사랑과 정성을 온 몸으로 느끼는 맛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게다.

하얀 솜털구름이 떠가는 한낮은 왜 그리 푸르고 맑은지 밥맛이 꿀맛이었다. 잠깐 1층 현관 앞으로 내려오라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내려갔다. 참외와 가지, 오이, 호박에 파까지 흡사 마트를 다녀온 느낌이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가져다주는 친구에게 너무 고마워서 이제는 고맙다는 말도 못하겠다.

남편은 유일하게 마다하지 않고 먹는 과일이 참외이기 때문에, 나올 때부터 끝물일 때까지 우리집 냉장고에는 참외가 떨어지질 않는다. 친구 남편은 참외를 별로 좋아 하지 않는데도 친구를 위해서 심고 가꾼 것이다. 참외가 익을 때마다 날자 계산하지 않고 따다주는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

친구는 맛나게 먹어주면 된다며 땡볕아래 한줄기 바람처럼 나를 감동시킨다. 농사를 지어서 살림에 보탬이 되는 게 아니라 이웃과 나누는 재미로 사는 부부는 참사랑을 실천하는 부부다. 종일 직장에서 힘들었을 텐데도 밭으로 향해서 산 끝자락에 태양이 걸려야 집으로 돌아온다. 요즘은 가을걷이로 분주하다.

며칠 전에는 먹기도 아까울 만큼 예쁜 호박을 선물 받았다. 들기름에 볶다가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니 어찌 그리 맛있던지 고기반찬이 전혀 부럽지 않았다. 늘 베풀고 사는 친구가 지척에 살고 있으니 나 또한 복 받은 사람이다.좋은 사람은 만나는 것으로 기분이 좋아진다.친구 부부는 받는 기쁨보다 하루하루를 나누어주는 기쁨으로살아가고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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