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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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19.10.3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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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선 수필가
이재선 수필가

잠자리 한 마리가 집안으로 들어왔다.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방황을 한다. 보다 못해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내보내고 보니, 많은 잠자리가 날아다닌다. 아! 가을이 오는구나. 알밤이 재래시장 좌판의 됫박에 소복이 담겨 있으면 가을을 느낀다.

봄은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감지한다지만, 가을은 온 들판으로 온다. 노란 벼이삭들이 고개를 숙이고, 겨울 긴긴 밤을 동무삼아 우리를 즐겁게 해줄 고구마에서도 가을을 느낀다.
엄마는 백포기 남짓한 김장 배추밭에서 떠난 줄 모르신다.

자식들 멱일 거는 약치면 안 된다고 배추벌레와 눈싸움을 하고 계신다. 김장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다시 가을이 왔다며, 바라 본 하늘의 뭉게구름이 인생이 흘러가는 것만 같다고 하신다. 나도 하늘을 바라본다. 하얀 뭉게구름이 가을 속으로 빠져든 느낌을 받는다.

아파트 화단에는 국화 손질이 한창이다. 노란색, 흰색, 와인색보다 좀 진한 색, 좀 있으면 국화향기로 뜰에 나가는 즐거움이 있을게다.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밤잠을 설치며 이웃집 오빠에게 부치지 못 할 편지를 쓰고 또 쓰고를 반복하던 날도 가을이었다.

난 유달리 봄을 좋아했다. 추위를 많이 타서도 그렇지만 겨우내 죽은 줄 알았던 나뭇가지에 움이 트고 꽃이 피는 것은, 신비하다 못해 경이롭다. 이런 봄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봄보다 가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여름이 지날 무렵, 볼을 스치는 바람이 상큼해지는 아직 가을이라고 하기는 애매모호한 날인 것 같다.  그 날 저녁 산책길에서 만난 실바람이 나를 설레게 했다. 그 후로 가을에 빠져버렸다. 엄마는 너도 나이가 들었구나 하셨다. 정말 그럴까?

이 묘하고 상쾌한 기분을 오래 느끼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안타깝다. 가을은 하루 자고나면 저만큼씩 달아나 버린다. 은행잎들이 노랑나비처럼 나부끼고 마지막 남은 단풍잎마저 빨갛게 물이 든다.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면 거리의 사람들도 옷깃을 여미며 걸음이 빨라진다.

콩 꼬투리에서 콩들이 통통 튀고, 마지막 빨간빛을 발하는 몇 개 남지 않은 고추는 주인의 손길을 기다린다.부지런한 농부는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을 새가 없다. 작은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농부의 손길에 가을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가을은 인생도 수확하는 계절이다. 어쩜 내 나이쯤이 아닐까? 자식들이 결혼을 하거나 직장을 잡아 독립해서 타지로 떠나고 없다. 난 빈자리에 서있다. 이제부터 자식 키우며 바쁘게 살아 온 세월을 반추하며 주위를 돌아보고, 부부의 자리도 확인하며 빈자리를 채워야할 시간이다. 

가을이 되면 지인들이 보내준 콩이며 들기름, 참기름, 고춧가루에 깻잎과 대추까지 곳간이 가득 찬다. 내가 가꾸지 않았는데도 넉넉해진 살림살이가 고맙다. 그들을 생각하며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게 될게다.

수확한 것을 나누어 주는 기쁨은 얻을 때의 기쁨의 배가 된다고 한다. 난 받으니 기쁘고 그들은 나누어 주니 기쁠 것이다. 이렇게 해도 기쁘고 저렇게 해도 기쁘니 가을은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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