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진 돼지
넘어진 돼지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19.07.24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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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선 수필가.
이재선 수필가.

좀 힘들어도 급하지 않으면 운동 삼아 6층 집까지 계단으로 걸어서 올라간다. 걸어 올라와서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면 조금이라도 운동을 했다는 뿌듯함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발목이 아파서 계단을 처다 보지 않고 얼른 엘리베이터를 탄다. 어쩌다 계단으로 올라오면 집에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던지고 알고 있는 민간요법을 동원한다.

그래도 아프면 마지막으로 약장에서 파스를 꺼내 발목에 부친다. 큰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 할 것이다. 그러나 남의 큰 상처보다 내 손톱 밑 가시가 제일 아프단 말을 믿게 된다.  어느 날 자는 도중에 발목이 아파서 잠이 깼다. 일어나 파스를 붙이는데 눈물 한 방울이 파스위로 또르르 구른다. 잠이 오지 않았다 이 나이에 별거 아니라고 위로를 하지만 발목이 아파서 요가도 다니지 못하는 자신의 비참함을 달래며, 슬픈 소설을 쓰며 길고 긴 밤을 지새웠다.

 이제 좋아하는 여행도 못 다니면 어쩌나 더럭 겁이 났지만 섣불리 병원을 찾지 못했다.  의사의 진단이 몹시 두려웠기 때문이다. 운동하면 좋아질 거라는 처방을 혼자 내리고 걷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아픔을 참고 걸었지만 나을 기미는 없고 파스를 찾는 횟수만 늘어났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관절이 부실하여 팔목 팔꿈치 무릎 발목까지 파스를 장신구처럼 달고 다닌다. 그 친구를 보면 안타까웠다.

왜 저리 미련을 떨고 있을까 요즘같이 의술이 좋은 세상에 파스만을 믿는 친구가 답답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아프고 보니 떠오르는 얼굴이  많았다. 얼마나 아프면 잠을 못 이룰까 생각하니 내가 통증을 느끼듯 마음이 아팠다. 병원서 어떤 처방을 해줄지 짐작만 하고 겁이 나서 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의사의 처방대로 하지 않을 때는 치료가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병원에 갔다.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처다 보는 내게 의사는 웃으며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 하냐며 많이 써서 그렇다고, 약과 도움이 되는 운동요법을 알려주었다. 그토록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던 슬픈 소설은 출판도 되기 전에 폐기처분되었다. 그러나 전혀 아쉽지 않았다.  팔순을 넘긴 엄마는  허리가 아프고 무릎이 아파서 병원을 이웃집 가듯 다니신다.  나이 들면 다 아픈거라고 열심히 병원 다니시라는 인사로 위로를 하며 전화를 끓곤 했었다.

내가 통증으로 고통을 받아 본 후부터 엄마와 통화할 때 진심이 담겨졌다. 지난밤도 통증으로 새웠는지 약은 남았는지, 요즘식사는 잘하시는지, 걷기 운동도 하시는지, 물어보고 싶은 말이 갑자기 많아 졌다. 관심을 가져주자 엄마는 속사포처럼 며칠간의 아픈 증상을 의사에게 설명하듯 쏟아 놓는다. 그래도 견딜만하다며 웃으신다.  돼지는 하늘을 보지 못한다고 한다. 머리의 각도 때문이란다. 다만 하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데 그것은 넘어졌을 때라고 한다.

나 역시 아파보니 다른 사람이 보였다. 넘어져야 돼지처럼 하늘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상전이  배부르면  종이 배고픈지 모른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뉴스에서 자주 나오고, 광고에서도 수없이 볼 수 있는 아프리카 어린이가 흙탕물을 마시고 있는 광경, 쓸어 질 것 같은 산모,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아이들, 다 열거 할 수 없을 만큼 아픔이 널려있다. 작은 기부로 흡족해 했던 자신이 정말 작아 보인다.  돼지처럼 넘어져 보니까 더 많은 것이 보였다. 달력을 넘겨보며 엄마의 정기 검진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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