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세
고향세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19.03.27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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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선 수필가.
이재선 수필가.

들에 나가니 어느새 꽃다지가 노랗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옆에 어느 아낙이 캐다가 흘리고 간 냉이에서도 꽃이 피었다. 옆집 밭을 보니 움파도 파랗게 올라오고 있었다. 마른 가지에서 새싹이 피어나는 느낌은 설렘이다.

누가 부르지 않아도 신통하게 자연은 때가 되면 슬며시 우리 곁으로 닥아 와 있다. 이 넓은 대지에 조금 있으면 농부들의 발자국으로 분주해질게다. 이 논에서 저 밭에서 트랙터 소리와 동네사람들의 두런거리는 소리로 봄은 정신 차릴 시간 없이 바쁘게 움직일 것이다.

이렇게 생동하는 봄 앞에서 흐뭇하고 행복해 하는 농부가 몇이나 될까? 신문을 넘기다 보니 고향세라는 대목에 눈길이 갔다. 세금을 내다내다 별 세금을 낸다고 중얼거리며 기사를 읽었다. 읽다보니 생각과 다르게 농민을 위한 좋은 제도였다. 본인의 고향이나 원하는 지자체에 일정한 금액을 기부하는 게 고향세다.

일정한 세금도 면제해 준다고 하니 고향에 있는 농민들도 위하고 본인들도 득이 되는 괜찮은 제도였다. 아직 시행은 되지 않았지만 곧 될 거라는 반가운 기사였다. 농민들의 행복지수가 해마다 줄어든다고 한다. 고생의 댓가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조금 젊다 싶으면 보따리를 싸서 농촌을 떠난다.

간혹 귀농한다는 사람들도 퇴직을 하고 본인의 먹거리만 생산하며 조용한 곳으로 휴양차 찾아온 이방인에 불과하다. 농민이 행복한 나라가 진정 잘사는 나라라는 말을 신문 한 귀퉁이서 읽은 기억이 난다. 나를 보나 이웃을 보나 그냥 직업이니까 봄이 오면 씨 뿌리고 가꾸고 가을이 되면 수확을 한다.

행복하게 농사를 짓는 사람은 드물다. 극히 드문 사람 중에 한사람을 난 알고 있다. 친정 당숙어른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얼른 봄이 와야 일을 한다며 봄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 군대 간 아들 봄이 오면 제대한다는 기별이 온 듯이 봄을 기다린다.

흰 머리카락을 흙 묻은 손등으로 쓸어 올리며 인사를 받는 모습은 젊은이 못지않게 힘이 있어 보인다. 이제 일을 줄이고 쉬어도 좋을 연세가 되었다. 겨울에는 농사를 반으로 줄여야지 하고, 봄이 오면 언제 그런 말을 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 참사랑 농부인 당숙어른을 만나면 여름날 나무 그늘에 앉아 시원한 수박 한 점을 베어 먹는 느낌이다.

우리가 이렇게 찰지고 기름기 흐르는 밥을 먹기 시작한 것은 그리 역사가 길지 않다. 우리는 통일벼 세대지만 부모님 세대들은 아니다.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고 쥐면 모두 흩어지는 안남미를 기억하는 세대가 아직은 우리 곁에 많다. 베트남 여행 갔을 때 밥이 입안에서 각자 놀아 씹기도 불편한 안남미를 경험한 사람이 많을 게다.

그런 밥도 배불리 못 먹어 침을 흘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는 이렇게 고기반찬에 찰진 밥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저 배부르게만 먹을 수 있기를 소망했다. 배만 부르면 부러울 것이 없을 만큼 행복했다. 보릿고개를 격은 분들은 감사하는 마음과 행복지수를 같은 선상에 둔다.

그렇지만 좀 젊다고 느끼는 세대들은 감사와 행복지수는 엄연히 다르다고 본다. 나같이 어정쩡한 세대의 사람들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난 늘 감사와 행복을 함께 둔다. 고단한 여름을 보내고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는 가을 문턱을 넘어선다.

그리고 열어 본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며, 흐뭇하게 웃는 농부가 많았으면 좋겠다. 또 너도나도 고향세를 서로 내겠다는 신청자가 많아서 처리가 늦어진다는 뉴스를 빨리 듣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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