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설렘
여행의 설렘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19.01.31 14: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혜숙 수필가.
이혜숙 수필가.

토요일 아침. 60대 이상 된 사람들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는 방송을 보았다. 가끔 보는데 어느 70대 어르신이 신혼여행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영원히 잊지 못한다며 신혼여행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한다.

신혼여행을 가서 신부의 원피스 뒤에 있는 지퍼를 내려주려고 하는 그때 초인종이 울려 나가보니 친구들이 여행지까지 따라와서 술 한 잔 하자고 하더란다. 어쩔 수 없이 따라가서 친구들을 빨리 취하게 하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정작 본인이 술에 취해 해가 중천일 때 돌아왔다나. 밤새 옷도 벗지 못하고 앉아서 밤을 샌 신부는 밤새 눈물로 지새고 눈이부은 얼굴이었단다.

마침 딸이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떠난 때라 귀가 솔깃하다. 예전에야 온천이 있는 곳이나 제주도로 가는 여행이 최고였지만 지금은 다들 외국으로 간다. 딸도 피지라는 섬으로 가서 그곳 원주민들과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통신기계의 발달로 돈들이지 않고도 통화도 하고 영상으로 그곳의 풍경도 볼 수 있다. 국내에 있을 때나 외국에 있을 때나 통화도하고 영상통화로 얼굴도 볼 수 있으니 감회가 새로우면서 나의 신혼여행이 생각났다.

지인 스님이 계신 소백산으로 가기위해 밤길을 걸었다. 등산화도 아니고 부츠를 신고 걷는데 다리도 아프고 힘도 들었다. 깜깜해서 보이지 않는 길을 스님은 잘도 찾아간다. 힘들다고 투덜거리니까 다왔다는 말로 나를 위로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깜빡이는 불빛이 보였다. 암자에 도착하니 스님은 따뜻하게 군불을 지펴 놓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산 정상 가까이에 있는 암자인지라 산에서 흐르는 물을 받아 생활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졸졸 흐르는 물이 꽁꽁 얼어있었다. 얼음을 깨서 물을 끓이고 그물로 밥을 했다. 우리 온다고 준비해 놓은 두부도 얼어서 된장찌개를 끓였더니 구멍이 송송 뚫리고 스펀지처럼 퍽퍽했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암자를 내려올 때도 눈은 녹지 않고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암자로 올 때 우리가 남긴 발자국만이 길을 만들어 놓았다. 눈길위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유배 가는 나타샤 같다는 말을 할 정도로 주변이 황량했다. 가끔은 그 사진을 보면서 어두운 밤길을 걷는 착각을 한다. 젊었기에 가능한 여행이었던 것 같다.

물질이 풍요한 시대를 살면서 왜 자꾸 지난날이 그리워지는 걸까. 중학생 때 버스를 타고 수학여행을 갔던 경주. 여행한다는 설렘으로 잠까지 설쳤다. 인연이 있었는지 포항에 살면서 불국사의 신도가 되어 다시 본 다보탑과 석가탑은 추억에서 현실로 불쑥 다가왔었다.

나는 아직도 혼자 가는 여행을 좋아한다. 가고 싶을 때 가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혼자만의 여행. 산천을 누비며 자라서일까. 혼자 떠나도 언제나 가슴이 설렌다.봉사 가는 요양원에 98세 된 어른이 계신다. 그분은 80세까지 혼자 유럽여행을 다녔다한다. '사랑을 위하여'란 노래에 나오는 노랫말이 좋다면 불러달라고 신청까지 하신다.

다음엔 '존재의 이유'를 들려달라고 예약까지 하신다. 그 어른을 보면서 언제나 청춘처럼 살며 여행을하고싶다. 요즘은 65세까지 청춘이라고 한단다. 고로 난 아직 청춘이다. 더 늙기 전에 설레는 멋진 여행을 많이 하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