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움에 대하여
자연스러움에 대하여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18.12.1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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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선 수필가.
이재선 수필가.

쌀이 떨어졌다. 예전 같으면 남편의 시간에 맞추거나 아들이 올 때 마트를 다녀왔다. 그렇지만 지금은 전화로 배달을 시키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새벽에 전기밥솥에서 잠시 후 밥이 완성된다는 멘트가 나온다. 부시시 일어나 밥상을 차려 남편에게 준다. 남편이 출근을 하면 다시 침대에 누워 밥하고 챙겼을 만큼 더 잔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너무도 자연스러워졌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만해도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았다. 일찍 일어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고 가스 불에 냄비 밥을 했다. 한 숟갈이라도 더 먹여 보내야 종일 뿌듯하고 그렇지 못 한 날은 개운치를 않았다. 그 때는 그 생활이 자연스러웠다.

우리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가 생각난다.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하고 국을 끓였다. 엄마가 해준 음식은 뭐든지 맛있었다. 정성껏 싸준 도시락을 들고 손을 흔들며 학교에 가던 모습이 아련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은 도시락 대신 영양소 함유량을 따져 만들어진 단체급식을 먹는다. 엄마들은 도시락 반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돈을 벌면 전기밥솥을 제일 먼저 사드리고 싶었다. 아침마다 고생하시는 엄마가 안쓰러워서였다. 처음 돈을 벌어서 전기밥솥을 사드렸다. 기뻐하시며 정말 편해졌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그 후로 우리는 노릇노릇하고 바삭한 누룽지나 구수한 숭늉을 구경할 수가 없었다.

아궁이도 없어지고 연탄불로 바뀌면서 감자나 고구마를 구워 먹지 않고 삶아 먹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요즘은 버튼하나로 해결 되는 게 많다. 세탁버튼 하나만 누르면 세탁에서 탈수까지 끝났다고 알려까지 준다. 밥솥도 버튼하나로 취사에서 뜸들이고 다 되었다고 친절히 알려준다.

쇼파에 앉아서 버튼하나로 모든 채널을 시청할 수 있고, 덥거나 추우면 버튼하나로 온도를 조절하면서 쾌적하게 생활을 할 수 있다. 이 또한 너무도 자연스럽다.

얼마 전 가족끼리 바닷가로 놀러 갔다. 고속도로로 진입을 하자 방향을 다시 알려주는 멘트가 네비에서 나온다. 길을 잘 못 들었나 했더니 그게 아니라 고속도로가 막히고 있으니 다른 길을 안내하는 거란다.

네비가 없을 때에는 지도를 찾아보고 이정표를 보면서 어렵게 목적지를 찾아갔다. 어렵게 찾아간 만큼 뿌듯함과 기쁨은 배가 되었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네비없이 목적지를 찾아가보라고 하면 편리하고 정확한 것이 있는데 굳이 어려움을 겪어야 하냐고 반문한다.

뿌듯함이나 낭만대신 편리함을 누리고 사는 게 자연스럽다. 우리는 편리함에 길들려져 있어, 조금 부족함 속에 숨어있는 기쁨이나 낭만을 찾지 않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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