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의 시간
조율의 시간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18.11.2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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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연 수필가.
한기연 수필가.

모두들 바쁘게 걷고 있다. 그 속에서 혼자만의 여유를 누리고 주변을 볼 틈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사람들에 떠밀려 걸었다.아침 출근 길 서울 지하철 안은 그야말로 지옥철이었다. 손잡이를 잡지 않아도 앞, 뒤로 끼인 사람들 속에서 발이 바닥에 닿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요즘 내게 있어 시간은 내리막길에 가속도가 붙은 것처럼 빠르게 움직인다. 누군가 나이만큼 시간은 속도를 낸다고 하더니 그 말을 체감한다.만으로 40대를 고집했었는데 이제 정말 50대가 코앞이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가는 지 모르게 벌써 올해도 한 달 남짓밖에 안 남았다.

많은 일을 해 왔다는 뿌듯함보다 하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가 더 크게 다가선다. 40대 중반을 지나면서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해 초조함이 생긴 탓이다.군에 간 아들은 12월에 있는 휴가일정을 앞두고 전화를 자주 한다. 지난 번 남편 혼자 면회를 갈 때도 면회 때 챙겨올 것에 대한 당부전화를 여러 차례 했다.

이번에도 휴가 올 날만 기다리며 전화를 건다. 군대 생활을 하는 아들에게 시간은 거북이처럼 느리게 가고 있을 것이다. 분명 같은 시간인데 지금의 내 시간과 아들의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속도를 내고 있다.

현관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면 서른 초반의 가족 사진이 보인다. 예쁘지 않아도 젊어서 환해 보이는 내가 있다. 예전에는 스쳐 지나쳤던 과거의 물건이 자꾸 눈에 보인다.거실 한 켠에 바이올린 모양의 멈춰진 시계도 그렇다. 결혼 초 집들이 선물로 받아서 쉽게 버리지 못하고 고치지도 못한 채 놔두었다.

그런데 그 시계를 보면 잠깐이나마 느린 세상 속에서 나를 본다. 가진 것 없어도 행복하고, 남편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던 시골에서의 삶을 떠 올리게 하는 물건이다.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몇 곱절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는데, 늘 시간에 쫒기며 살고 있다.

바쁘다보니 남편과 함께 하는 시간도 줄었다. 주말에도 일하며 왜 그리 힘들게 사는지 내 삶에 의구심이 자꾸 든다. 누구나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만 사람마다 느끼는 속도도 다르고 사용하는 방법도 천차만별이다. 시간에 쫓기듯이 휘둘리지 않고, 내 의지대로 조율해서 쓸 수 있는 지혜를 얻고 싶다.

빠름과 느림을 적절히 섞어서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하고 싶다. 그 동안 마음을 나누지 못했던 이들과 함께하는 채움의 시간도 마련해야겠다. 기대치가 높아진 나의 시간은 바위 옆을 휘돌아 나가는 물길처럼 흘러간다.

지하철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빠르게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잠시 발을 멈추고 아침 햇살을 받는다.내 시간의 주인으로 돌아가서 남아 있는 내 삶이 좀 여유롭기를 기대하며 다시 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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