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이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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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18.10.1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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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혜숙 수필가.

언제나 북적이는 지하철 역. 오늘도 변함없이 많은 사람들이 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도 서서 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무심히 지하철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웬 횡재인지 자석 두 개가 비어있다. 나는 가까운 쪽에 앉고 남편보고는 건너편 빈 좌석에 앉으라고 했다. 한 시간 정도 가야하는데 잘 되었다고 생각하며 편한 자세를 취했다.

잠시 후, 남편이 일어나서 내게로 오더니 일어나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 했더니 자리를 보란다. 임산부 좌석이었다. 핑크빛 좌석은 임산부를 배려하자는 뜻에서 만들어 놓은 것인데 그만 그것을 못보고 좋다고 앉았던 것이다.
 

재빨리 일어나면서 누가 뭐라고 한 것은 아닌데 혼자 말을 했다. “임산부 자리인 줄 몰랐네." 남편도 모르고 앉았다가 바닥에 있는 핑크빛 표시를 보고 뒤늦게 깨닫고 일어난 것이란다.

얼마 전, 지하철을 타고 딸에게 가는 중이었다. 젊은 청년이 임산부석에 앉아서 앞에 서 있는 임산부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일어나길 기다려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 청년에게 일어나라고 하면서 이 좌석이 어떤 사람이 앉아야 하는지 등 뒤에 붙은 임산부석이란 글자를 가리켰다. 청년이 일어나기에 임산부에게 앉으라고 했더니 괜찮다고 하면서도 힘들었는지 감사하다며 앉았다.

딸에게 지하철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했다. 딸은 그러다가는 폭행당한다며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란다. 나는 다음에도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똑같이 할 것이라고 했더니 요즘은 말만 잘못해도 큰일 난다며 절대 그러지 말라고 한다.

오래된 병 때문에 한두 달에 한 번씩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을 다닌다. 차를 가지고 가면 편하겠지만 막히는 것이 싫어 시간도 정확한 지하철을 이용한다.딸과 함께 지하철을 탈 때다.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파서 아무도 없으니 앉았다가 일어나면 되지 않을까 했다.

딸은 임산부가 없어도 절대 앉지 말고 그대로 비워두란다. 임산부가 들어왔다가 누가 앉았다가 일어나면 미안해 할 수도 있단다. 절대로 맞는 말이다.

요즘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에 열중하고 있다. 세상이 휴대폰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배려석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당연한 듯 앉아 휴대폰에 눈을 박고 있다. 휴대폰을 보는 것을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지만, 앉을자리와 앉지 말아야 할 자리는 구분했으면 좋겠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 중년의 여인이 들어오더니 임산부석에 앉는다. 비워두라고 말하고 싶지만 쳐다보는 걸로 무언의 압력을 가했다. 그 여인은 한 정거장이 지나고 다른 곳에 자리가 나자 일어났다.

그 자리가 불편해서 일어선 것이리라. 나이 많은 것이 벼슬인 양 얼굴에 철판을 깔고 생각 없이 행동하지 않아야 할 텐데 더 나이 들어 주책없는 행동할까봐 걱정을 가불하고 있다.

기본이 우선되는 일. 바로 내가 먼저 지켜야 한다. 임산부석에 또 다른 젊은이가 와서 앉는다.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다가 딸의 말이 귓전에 울려서 달싹거리는 입을 다물며 눈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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