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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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18.08.07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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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혜숙 수필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목을 빼고 기다리는 모습에 어린 자식이 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는 느낌이랄까. 꼿꼿하던 허리는 굽어지고 얼굴에는 주름이 짙게 자리하고 있다. 두 손을 내밀며 환한 웃음으로 다가오는 어무이를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

아침에 집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빌딩숲 속에 호텔 같은 건물이 나타났다. 안내데스크에서 어무이를 찾으니 전화를 걸어준다. 미로 같은 곳을 헤매다가 결국 직원의 도움을 받아 겨우 어무이를 만났다.

어무이를 처음 만난 것은 삼십 년 정도 된 것 같다. 공부하는 스님들에게 공양을 하러 다니자는 취지에서 모임을 만들었다. 포항의 작은 암자에 적을 두고 어무이는 신도회장과 모임의 회장을 맡고 나는 총무를 맡았다. 내 성격이 강한데도 둘의 궁합은 환상이었다, 불자로서 같은 길을 걷기도 했지만, 성격 또한 닮아서일까 모든 것이 잘 맞았다.

포항에서 울산으로 이사하면서 모든 소임에서 손을 놓고 헤어졌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모습은 가까이 살던 딸을 멀리 보내는 마음이었는지 눈물까지 보이며 서운해 했다. 전생의 인연이 지중했을까. 자주 전화로 안부를 묻고 가끔은 포항을 찾았다. 둘이 웃으며 이야기 하는 것을 본 지인들은 사이좋은 모녀 같다고 했을 정도다.

회장님이란 호칭이 입에 붙어 그렇게 부르면 내가 무슨 기업하는 사람이냐며 그냥 엄마로 불리기를 원했다. 그때부터 어무이로 호칭이 바뀌었다. 충청도로 이사하면서 자주 찾아뵌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전화 할 때마다 보고 싶다는 말에 하던 일손을 멈추고 방문한 길이다.

올해로 90세가 된 어무이는 아직도 총기가 대단하다. 건강이야 예전만 못하지만 대쪽 같은 성격은 변함이 없다. 멋진 실버하우스에 가신 것은 작년 8월이다. 건강하게 운동하고 문화생활을 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 외관상으로는 부족한 게 하나도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도 평생을 살아온 내 집만 하겠는가. 이곳에 온 후로 정신적으로 많이 아파서 병원에 다녔다고 한다. 나무도 옮겨 심고 뿌리를 내리려면 시간이 필요하듯 어무이도 이곳에 정착하기까지 힘든 시간을 보냈나 보다.

남편이 어무이한테 우리 집으로 가자고 한다. 며칠만이라도 시골에서 지내시다가 오자고 하는데 이제 움직이는 것도 힘들다며 싫다며 “내가 가서 느그 집에서 산다고 하면 우짤래." 하신다. 그러면 그냥 우리 집에서 같이 살자고 했더니 차타는 것도 힘들고 움직이기 싫다며 그냥 있겠단다.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과 또 낯선 곳에서의 생활이 두려운 게다.

자식들이 잘 산다는데 왜 함께 살면 안 되는 걸까. 평생을 자식들의 위해 기도를 놓지 않은 어머니인데. 구순의 어른이 편리한 것만 좋아할까.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고 하지만 자식들과 함께 비비고 사는 것만 하랴. 어무이를 보니 안타깝고 쓸쓸한 마음이다.

저녁때가 되어 일어서니 자고 가란다. 준비 없이 온 것이라 다음에 오겠다고 하고 돌아왔다. 서운한 얼굴이 역력하다. 내가 어무이의 자식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나 역시 별수 없으리라 싶으면서도 마음이 무겁다. 돌아서 오는 길. 내 마음을 아는 듯 금방이라도 소나기를 쏟아 낼 것 같은 짙은 먹구름이 몰려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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