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윤이 바보
가윤이 바보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18.03.28 13: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숙자 수필가.

또 한 아이의 외할미가 됐다. 가을비로서는 제법 많이 내리는 날 오후. 3.6킬로그램의 신생아로 우리 곁으로 왔다. 제 어미는 자연분만 못함을 많이 미안해했다.초산으로는 힘든 서른아홉 나이이고 결혼 10년 만에 얻은 아이라 주위의 많은 축복을 한 몸에 받으며 새 생명에 대한 탄생의 기쁨을 안겼다. 딸은 눈물을 흘리며 서럽게 울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저토록 서럽게 우는 건 처음 봤다.

늦게 가진 아이여서 뭐든 좋은 건 다 해 주고 싶은 마음인 딸이 특히 두 가지, '자연분만과 모유먹이기'는 꼭 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세상 일이 생각대로 되기만 하는가? 예정일에서 일주일이 지나도록 출산 기미가 없었다. 병원에서 자연분만을 유도했지만 여의치 않아 제왕절개로 낳게 되었다.

자연분만을 하지 못해 아기에게 미안하다며 우는 울음이었다. 모유 먹이는 데는 별 지상이 없음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애를 가질 무렵, 정작 본인들은 태몽도 꾸지 않았단다. 외할미인 내가 대신 꾼 것 같다. 붉은 해가 내 치마 폭에 들어와 그걸 감싸 안고 어쩔 줄 몰라 허둥대다 잠이 깼었다.

태양은 아들을 달은 딸이라는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꿈에 본 것이 붉은 태양이라서 사내애가 태어나려나보다 했지만 공주다.우리 때만 해도 아들 선호 사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인지 은연중에 손자를 보고 싶었나 보다. 태몽만으로 손자가 태어날 거라 생각했으니까. 아들 생길 때까지 낳느라 자식을 여럿 두기도 하고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함을 필수로 여기던 우리 세대를 보아 와서인지 은근히 기대했었나 보다.

인간은 생로병사(生老病死)에 의해 살아간다. 손녀는 태어나는 생(生)의 단계이고, 나는 지금 늙어 가는 노(老)의 단계이다. 언젠가 나도 병들어 삶을 마감하는 날이 오겠지. 그러나 지금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기쁨의 탄성을 지르고 싶다.

아기가 태어나 유년에는 귀염을 떨면서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다. 물론 끝까지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자식도 있겠지만 극소수이다. 우리 아기도 때론 기쁨을 주고 때론 걱정을 끼치며 살겠지. 내가 딸을 걱정하는 모든 것들을 딸은 또 제 딸을 위해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렇더라도 지금은 오로지 새 생명의 탄생이 매우 기쁘고 행복하다.아기 이름을 가윤이로 정했다. 아름다울 가(嘉) 높을 윤(?). 요즘은 아들 바보 딸 바보가 있다는데 난 외손녀 바보가 됐다. 우리 집에 오랜만에 태어난 새 생명으로 인해 우리들의 삶에 기쁨의 정점(頂点)이리라.

내가 애들을 키울 땐, 위로 두 애가 쌍둥이보다 더 힘들다는 연년 생인 탓이었을까? 좋은 마음보다 힘듦의 연속이었다. 매일이 전쟁 같았고, 단손에 키우다보니 너무 지친 상태라 지친 기억밖에 없었다. 가윤이는 내 책임에서는 벗어난 관계라 그런지 마냥 예쁘기만 한다.

생후 45일, 제법 눈도 맞추고 옹알이하려는지 조금씩 소리도 낸다. 배부르게 먹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웃어 줄 때는 온 식구들이 가윤이의 노예가 된다. 별 탈 없이 건강한 몸으로 우리 곁으로 온 것처럼 맑고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길 기원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