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지는 빛
살아지는 빛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17.11.22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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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순 수필가.

노란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달린다. 때마침 석양의 햇살을 받아 은행잎들이 금빛으로 반짝인다. 이 가을 마지막에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황금빛 왕관처럼 빛을 뽐내고 있다. 하지만 며칠 후 찬바람이 불면 우수수 떨어져 그 빛을 잃어 버릴 것이다.

친정 집 앞에도 오래 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은행나무 아래에는 평상이 놓여 있었고 평상 위는 늘 아버지의 자리였었다. 오래 전 주인을 잃은 평상 위에는 매년 수북히 떨어진 은행잎만 쌓여 있었는데 얼마 전 친정에 가니 평상도 은행나무도 다 사라졌다. 집 앞 수로 공사를 하며 은행나무를 베어 버린 것이다.

빈자리는 표가 난다고 했던가. 휑한 자리를 보며 서운해서 물어보니 가을이면 은행잎과 은행들이 수북히 떨어지는데 이제는 은행을 주울 기력도 없고 은행잎 쓸어내기도 힘들다고 하신다.

내년이면 팔순이 되는 친정 엄마는 몸이 쇠약해서 모든 일이 힘들고 버겁다. 약해져 가는 심신의 고통 중에서 엄마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점점 사라져 가는 시력이다. 엄마의 시력은 의사가 이미 선고를 내렸을 정도로 마지막 한 두 개의 시신경에 겨우 의존하고 있다.

그런 엄마에게 은행 열매며 노란 은행잎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저 육신을 힘들게 하는 불청객일 뿐이다. 그래서 수로 공사를 하는 사람들이 물었을 때 미련없이 베어 내라고 하셨단다. 자식들에게는 여러 가지 추억이 담긴 은행나무지만 눈이 불편한 엄마에게 은행나무는 아무런 존재의 의미가 없던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 엄마에게도 두 눈은 한 평생 등불이었고,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동반자였다. 엄마의 삶은 평생 희생과 인내였다. 힘든 시절을 보내며, 자식들을 키우면서, 하늘이 엄마에게 요구한 것은 무조건적인 헌신이었다.

그 희생이 노년기에 행복한 보상만 남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지 않게 실명이라는 시련으로 다가왔다. 엄마의 건강이 에너지를 다 소진하듯 빛을 잃어가는 것이 슬프다. 눈 만이라도 새로운 빛으로 채워드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어디에서도 사라진 빛을 찾을수 없으니안타깝다.

오십 중반의 내 나이는 은행나무로 비유하면 얼만큼 자란 것일까. 아직 금빛 찬란한 시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성했던 초록의 잎들이 노랗게 변해가고 있는 시기 아닐까. 그래서 나무 전체가 노랗게 변하고 햇살을 받아 금빛 왕관처럼 찬란하게 반짝이는 시절이 내게 남아 있다고 믿고 싶다.

가끔 기억이 가물거리고, 생각과 행동이 내 안에 두 사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따로 움직일 때가 많다. 하지만 노년기에 접어들면 찬란한 한 시절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해 줄거라 믿는다. 나이 들면서 사라지는 기억들도 많지만 새로운 기억들이 그 자리를 채워 주니 다행이다.

노란 은행잎도 지금은 찬란하게 빛나지만 찬바람이 불면 저항하지 못하고 떨어진다. 그렇게 앙상한 나뭇가지로 남아 있다가 계절이 순환하면 다시 힘차게 초록의 잎을 내민다. 가족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엄마도 이 겨울을 보내고 나면 초록의 봄이 오듯 사라진 빛이 엄마의 두 눈 안에 가득 채워지길 빌며 두 손을 모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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