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벙어리
나는 벙어리
행복의 뜨락
  • 박윤희
  • 승인 2017.08.29 09: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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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윤희 수필가.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창세기11:1~9)

성경에는 수많은 유명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바벨탑 사건이다. 성경에 따르면 원래 사람들이 사용하던 언어는 하나였고, 말 역시도 하나였다.

“성읍과 탑을 건설해서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사람들은 열심히 성읍과 탑을 건설했지만 그것을 좋게 보시지 않은 하나님은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해서 사람들을 흩어져 살게 하셨다.

창세기 11장 전반부에 쓰여 있는 바벨탑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고,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로 평가되어지는 바벨탑은 인간이 건축 기술을 동원해 끊임없이 쌓아올려 그 높이가 하늘을 찌르기 일보직전까지 도달했으며 이로 인해 신들의 화를 불러 결국 무너졌다는 전설로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요즘은 국제화 세계화라는 단어 속에 묻혀 '세계를 하나로' 라는 구호가 익숙한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여러 언어를 배우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한다. 전 세계의 나라가 230여개 전 세계의 언어 수가 3~4천여 개 문자수가 100여개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영어라는 중간언어로 세계가 하나로 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빠진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나는 가끔 언어의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 다양한 언어를 가진 외국인들에게 언어를 가르친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들은 우리에게 이방인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에 살면서 자주 이방인으로 느낄 때가 많다. 일주일에 4일은 외국 학생을 만나기 때문에 나는 자주 벙어리가 된다.

여러 나라 학생들이 섞여 있는 학급에서 수업할 때는 모든 언어를 구사할 수 없기 때문에 주로 한국어를 사용하지만, 한 언어를 쓰는 학생들이 대부분인 학급일 경우 그 나라의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영어라고는 콩글리쉬 수준인 나에게는 매번 당황하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발생된다. 특히 초급 학습자의 경우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작년에 택견을 배우기 위해 4개월 연수 온 운동선수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었다. 외국 학생들 대부분 영어 학습권의 학생들로 구성되어 영어를 써야 하는데 짧은 영어 실력으로 애를 먹었다. 그런데 이번 학기에는 중국 유학생들을 맡게 되었다. 전에 중국어를 배운 적이 있지만 단어 알아듣는 정도로 중국 학생들과의 대화는 번역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렇듯 이방인 속에 또 다른 이방인인 나는 벙어리가 된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괴리감이 무척 컸던 경험을 했다. 베트남에서 온 결혼여성이민자들과 친하게 지냈다. 그러나 5~6명의 베트남 친구들 사이에 끼어있던 나는 그들의 대화에 끼지 못 했다. 대화의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에 닥치니 혹시 내 흉을 보는 것 같고 자기들끼리만 낄낄 웃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답답함을 떠나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경험을 하고서야 한국으로 시집 온 이주 여성들과 외국인 근로자들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을지 공감이 된다. TV 프로그램 중 '고부00'이라는 방송을 자주 본다. 거기에서는 한국 시어머니가 외국인 며느리 나라에 일주일동안 지내면서 언어의 답답함을 직접 겪어보고 그동안 겪었을 며느리를 이해하는 내용으로 꾸며졌다. 우리는 상대방을 이해한다고는 말하지만 본인이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이처럼 언어란 우리 일상에서 매우 중요하다.

직업 특성상 다른 언어를 배워야 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겨우 단어 정도 알아듣는 수준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나에게 언어의 능력이 뛰어나 세계 각 나라 언어를 알아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모든 언어를 알아듣게 되어도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한국 사람끼리도 대화가 되지 않고 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땐 '차라리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이라면 이해가 돼.'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소통은 언어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몇 개국의 언어를 잘한다고 해도 소통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언어의 차원을 떠나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소통이 필요한 것 같다. 이따금 나는 벙어리가 되지만 그들에게 마음으로 소통을 하는 벙어리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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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아 2017-09-29 16:30:06
웃는 얼굴과 호기심과 신기함만 상상 했던것 같네요. 여러국적의 언어들을 다 섭렵 할 수도 없고. 같은 언어를 가진 사람끼리의 교육과정과는 많이 다를것 같습니다.
외국인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입장을 따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잘 이해 할 수 있게 되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