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어른
어쩌다 어른
행복의 뜨락
  • 이재선
  • 승인 2016.11.08 2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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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선 수필가.

동생네 식구들과 저녁을 먹고, 티비 예능 프로에서 연예인들이 결혼식 축가를 불러주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내가 주인공이나 된 듯 가슴이 찡하도록 감동스러웠다.

우린 자연스럽게 흘러간 결혼식 얘기들을 하게 되었다 동생들과 나이 차이가 많은 덕에 내 자식들이 이모들 축가를 불러주었었다. 딸애가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바이올린을 연주해 주기도 했다. 내 자식들이 동생들 결혼식에 한 장르를 담당하는 게 마냥 흐뭇하고 기뻤다며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런데 딸에가 엄마는 바이올린 연주할 때 어디가 틀렸다고 지적만 했지 칭찬을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즐겨보는 티비 프로중에 어쩌다 어른이라는 프로가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철이 들었고 언제부터 어른이 되었을까하는 의문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산다는 것을 그 프로를 보면서 새삼 더 느끼게 되었다. 살다보니, 아니면 나이가 들고 보니, 그도 아니면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니 자연스레 어른이란 칭호를 얻게 된 것 같다.

철이 들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당신은 어른이 되었오"라는 말을 듣고 어른이 된 사람은 아직까지는 들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나라에 화제가 되었던 젊은이가 있다. 불이 나자 집밖으로 나왔다가 이웃들에게 불이 난 사실을 알리고 다른 사람을 구조하다 목숨을 잃었다. 대단한 젊은이라고 칭찬을 하는 부류와 목숨까지 버리는 일은 좀 심했다는 의견들로 나뉘었다.

나 역시 “목숨까지는 아니지" 하면서 후자 의견에 동의했다. 그런데 그 젊은이의 엄마와 인터뷰하는 것을 보면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평소에도 남을 돕는 일을 일상생활처럼 하고 살았다고 한다. 도와주는 것은 좋지만 본인의 생명까지 내 놓지를 말라는 엄마의 말에 그렇게 몸을 사려서 하는 것은 봉사가 아니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린 젊은이에게 말로 할 수 있는 칭송 말고 더 무엇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깊이하게 된다.

나도 한 달에 세 네 번은 봉사활동에 참여한다. 처음에는 남을 위하여 일하고 뭐 그런 거창함이 아니라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시작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고 익숙할 것 같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을 했다. 그런데 회를 거듭할수록 마음가짐이 달라져서, 대충 시간만 때우다 오는 날이 적어지기 시작했다.

목욕을 시키고 청소를 하고 손맛사지를 해줄 때 점 점 정성을 들여 하게 되었다. 나이 들어서 나도 누군가를 위해 할 일이 있어야 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한 봉사활동이 다른 사람을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처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장한 청년을 생각하면 앞으로 내민 손이 마냥 작고 부끄러워지기는 하지만 ... ... .

어른이 되고 싶어서 어른이 된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대부분 나이가 들면 어른이라고 부른다. 어쩌다 어른이란 프로에서는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고, 잘못을 했을 때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하며, 나 아닌 사람을 위해서 희생도 할 줄 알아야하고, 다른 사람이 잘한 것을 칭찬할 줄도 알아야 비로소 어른이 된 것이라고 정의를 내려주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 졌다. 그 젊은이는 나이는 어리지만 이미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녀도 어른이 되지 못한 엄마도 있었다. 칭찬보다 지적질로 어린자식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고 수 십 년을 살았으니 얼굴 들기가 부끄럽다. 저녁에 집에 돌아 온 딸을 꼭 안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때는 엄마도 어른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니까 이해해 주고 정말로 미안하다고 말하며 힘주어 안아 주었다. 응어리진 마음이 녹아내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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