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기억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16.10.19 13: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박윤희 수필가.

갑자기 뒤에서 쿵하는 소리가 나더니 신호 대기를 하고 내 차를 뒤차가 들이박았다. 확인해 보니 다행히 범퍼만 닿아서 크게 부서지지 않았다. 괜찮은 것 같아서 다시 운전대를 잡았는데 손이 떨리고 속이 미식거리고 머리가 멍하였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청심환을 사 먹었다. 시간이 지나니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았다. 오후가 되니 갑자기 뒷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교통사고 후 뒷목 잡고 차에서 내리는 것은 TV드라마에서나 봤지 내가 뒷목 잡을 일이 생길 줄 몰랐다.

아프긴 한데 외상으로는 아무 증상이 없으니 병원에 갈 수도 없고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자고 일어나니 뒷목이 뻐근하긴 했지만 병원 갈 정도는 아니 것 같아서 참았다. 남편의 말이 근육이 놀라서 그런 거니까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해서 참아보기로 했다.

다음 날 접촉사고 내신 분한테 연락이 왔다. 나는 괜찮다며 사고처리는 안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목이 점점 더 아파오기 시작했다. '괜히 그냥 넘어 갔나?' '병원에 입원할 걸 그랬나?' 후회가 되었다. '다시 전화해서 아프다고 해야 할까?' 복잡한 생각들이 들었다.

지인들이 왜 교통사고 접수를 안 하는지, 병원에 가서 검사는 안 하는지 등 나의 행동이 의아한 모양이었다. 접촉사고 합의금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복잡한 고민 속에서 나를 붙잡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20여 년 전 운전 미숙으로 인해 크게 교통사고를 낸 적이 있었다.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하다가 오토바이를 탄 할 아버지를 친 적이 있었다. 처음 난 사고에 순간 머리가 하얘져서 멍했다.

어느 누구도 피 흘리는 할아버지를 태워줄 차는 없었다. 내가 타고 간 차로 병원까지 이송을 해야 되나? 주유하던 아저씨께서 자신이 병원까지 운전해 주겠다고 했다. 병원까지 가는 동안 나는 겁이 떨컥 났다. 그런 나에게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려주면서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사고처리와 환자의 병원 치료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저씨의 명함을 받아 주머니에 넣고 연락드리겠다고 했다. 얼마 후 그 아저씨가 생각이 났다. 주머니에 명함이 없었다. 아마 병원에서 흘린 것 같다.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에 죄송함이 살면서 문득문득 생각이 났다. 그 아저씨의 작은 배려가 긴 여운으로 남았다.

사람이 살다보면 어찌될지 아무도 모른다. 가끔은 손해 보는 것 같고 억울하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다. 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또 다른 배려의 싹을 틔우길 바라며 잠시 먹은 욕심을 떨쳐버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