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3라운드
3분 3라운드
행복의 뜨락
  • 한기연
  • 승인 2016.09.27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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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수필가.

지난 주 토요일 남편, 그리고 큰아들과 전라도 광주로 향했다. 9월 초인데도 여름은 끝날 줄 모르고 뜨거웠다. 아이스박스에 음료수와 물을 챙기고 서둘렀는데도 시간이 촉박했다. 둘째 아들 경기가 2시에 광주에서 있어서 가족이 함께 가는 길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둘째 아들은 학교에 적응도 제대로 못하고 선생님께 불려 다니고 보충수업 때 몰래 빠져 나가서 학교에서 찾는 전화가 수시로 왔다. 휴대폰에 발신전화가 학교전화이면 매번 죄를 지은 것처럼 망설이면서 받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부모가 부리는 공부 욕심은 애당초 포기했고 제발 졸업만 무사히 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킥복싱을 배우겠다며 학원을 보내달라고 먼저 이야기를 했다. 무엇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 처음이라 흔쾌히 응하고 보니 킥복싱 학원이 금왕에 있었다.

그래도 하고 싶은 걸 하면 반항도 덜 하게 되리라는 기대로 저녁마다 금왕에 태워다주고 운동하는 동안 차 안에서 기다렸다.

한참 공부할 시기에 다른 사람들은 과외받느라 엄마가 로드매니저를 자처한다는데 나는 운동하는 아들의 로드매니저가 된 것이다. 그렇게 1년 정도 금왕에 다니고 음성에도 킥복싱 학원이 생겨서 옮기게 되었다. 3개월 단위로 수강료를 결제했는데 나는 그저 학원비만 잘 줄뿐 어떤 것도 관여하지 않았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부모자식 관계로 중학교를 보내면서 중3 말에는 어느 정도 사춘기를 벗어나게 되었다.
지금 고3인 아들은 아직까지도 킥복싱을 하고 있다. 선수로 키울 생각은 없지만 아들이 좋다니까 가끔 시합이 있다면 출전비를 주고 단증 심사비를 주는 정도로 물질적인 지원만 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한 달 전부터 아침마다 운동을 한다며 깨워달라더니 스스로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9월 3일에 안전장비 없이 링 위에서 하는 프로 데뷔전을 치른다며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일주일전에 느닷없이 시합중 사고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부모동의서를 내밀었다.

선뜻 서명을 할 수 없었다. 미루고 미루다 시합전 날 서명해서 아이편에 줘서 광주로 내려 보냈다. 사각의 링은 뜨거운 뙤약볕아래 야외에 설치돼어 있었다. 병원에서 온 구급차도 준비돼 있었다. 음성에서 체급별로 아들과 아들친구가 갔다. 모두 광주사람들이었다.

아들친구가 먼저 시합을 했는데 2라운드 중반까지 하고 상대편의 승리로 끝났다. 경기는 3분 3라운드로 진행되었다. 드디어 아들의 차례가 되었다. 내 손에 뜨거운 땀이 고이기 시작하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1라운드에서는 예상외로 아들이 상대의 얼굴을 가격하며 선전을 하였다.

2라운드부터는 멀찍이 떨어져서 조바심을 쳤고, 3라운드에는 체력이 다한 아들이 몰리고 있는 게 얼핏 보였다. 시계초침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3분은 길었다. 길고 긴 3분 3라운드의 경기가 끝나 상대편이 이겼고 아들은 눈 옆에 피가 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링을 내려왔다.

링을 빠져 나올 때 관중들은 졌지만 잘 싸운 아들을 향해 박수를 치고 ‘잘 했다’는 말을 해 줬다. 새삼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서로 얻어 터지는 경기를 왜 하는지 이해가 안 가기도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연습한 것을 알기에 대견스러웠다. 오늘의 3분 3라운드를 기억한다면 세상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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