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동 저수지에서의 하루
봉동 저수지에서의 하루
행복의 뜨락
  • 서민웅
  • 승인 2016.08.03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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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민웅 수필가.

지난 5월 하순께 맹동면 봉동 저수지에서 낚시를 했다. 며칠 전 낚시를 좋아하는 친구가 고향 쪽으로 낚시나 한번 하러 가자고 제안했다. 내 고향에는 한강과 금강의 분수령 지역이라 저수지가 멀지 않은 곳에 많은 편이다. 한 친구가 재미를 보았다는 봉동 저수지로 가기로 정했다.

민물낚시 하기엔 붕어가 알을 낳을 5월 초순이 제격이나 서로 일정을 맞춰보니 하순이 되었다. 올 5월은 기온이 새 기록을 세울 정도로 높아 그날도 콧등에 땀이 배어 나왔다. 면 소재지에서 산길을 몇 굽이돌아 넘어가니 저수지 상류가 나왔다. 모내기 철이라 상류 지역은 물이 많이 빠져 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나는 낚시 문외한이다. 민물낚시를 해본 경험이 없어 낚싯바늘도 매달 줄 잘 모르고, 낚싯밥을 만들 줄도 모른다. 이번 낚시 여행의 무임승차자다. 친구들이 낚시채비를 해주면 미끼나 꿰어 물에 던져놓고 찌가 움직이나 열심히 바라볼 참이었다. 내 마음은 고기가 잡혀도 좋고 잡히지 않아도 좋았다.

낚시 고수들이 낚시채비를 했다. 나는 두자 반짜리 낚싯대 하나만 만들어 주라고 부탁했다. 그때부터 지렁이 미끼를 꿰어 물에 던지고 수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찌를 바라보며 고수에게 낚시 채는 순간을 물어보았다. 찌가 쑥 올라와 쓰러지거나 확 딸려 들어갈 때 채라고 했다.

물속에서 물고기가 미끼를 건드리는 대로 낚싯줄을 타고 찌에 그려지고 내 손에 전해졌다. 미동도 않던 찌는 좌우로 또는 상하로 조금씩 움직이곤 했다. 그때 낚싯대를 채면 지렁이가 매달린 채로 나왔다. 찌가 약간 솟아오르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낚싯대를 꺼내보면 지렁이는 사라지고 빈 바늘만 다가왔다. 다시 지렁이를 꿰고 반복했다.
옆에서는 붕어 잡았다는 환호성이 자주 들려왔다. 씨알이 굵으니 자니 하고 붕어를 낚싯바늘에서 떼어냈다. 지렁이를 먹어치우는 걸 보면 내가 고기를 잡지 못하는 건 채는 적당한 순간을 놓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든 요령과 숙달이 필요하다.

저녁때가 가까워지자 싫증이 나기 시작했지만, 열심히 미끼를 새로 꿰어 낚시를 던졌다. 해가 넘어가고 사위가 조용하다. 저수지 물 위를 비추는 열사흘 달빛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어슴푸레했다. 야광 찌가 내 눈에 신호를 보내며 저만큼 유유히 떠 있다. 애초에 저수지에서 하룻밤을 친구들과 담소를 나눈다는 마음으로 참여한 것이라 마음은 편했다.

늦저녁, 이따금 밤공기를 타고 짝을 찾는 뻐꾸기 울음소리와 고라니 소리가 산 쪽에서 들려왔다. 찌가 무심하다. 물고기가 저녁 먹고 쉬는 시간인가.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다시 찌가 움직였다. 망설이다 낚시를 당겼다. 낚시가 묵직하고, 손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어른 손바닥만 한 붕어가 매달려 나왔다. 친구들이 한마디씩 했다.

오늘 잡힌 놈 중에 몇 번째 손가락에 드는 큰놈이라고. 자정이 가까워졌다. 준비해간 덧옷을 입어도 약간 추위를 느꼈다. 눈 붙이러 좌대 방에 들어가면서도 아까 잡힌 그놈이 나를 깊은 꿈속으로 이끌어 줄 것만 같았다. 봉동 저수지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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