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거리
적당한 거리
행복의 뜨락
  • 이혜숙
  • 승인 2016.06.20 07: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혜숙 수필가.

사랑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너무 멀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는 거리. 아름답게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봄이 되면서 곳곳이 잔치 마당이다. 남쪽 제주도를 선두로 시작된 잔치는 북쪽을 향해 조금씩 올라왔다. 지방시대가 열리면서 곳곳마다 잔치가 벌어진다. 우리 민족만큼 잔치를 좋아하는 나라도 없지 싶다. 사람 많은 곳은 가기 싫어하던 내가 이번 꽃 잔치에 동참하기로 했다.

의성에서 열리는 꽃 축제를 보기 위해 차로 두 시간을 달렸다. 넓지 않은 공간에 천막을 친 모습이 축제장이라고 알리는 것 같았다. 옛날이라면 첩첩 산골이란 말을 할 만큼 시골이었다. 잔칫집답게 멀리서도 음식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자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심어놓았다는 산수유나무. 노란 꽃이 계곡과 밭가에 흐드러지게도 피었다. 작은 농가를 둘러싸고 고목이 된 산수유 꽃이 장관을 이루었다.

어려웠던 시절, 산수유 열매를 따서 치아가 패이도록 씨를 발라 그것을 팔아 돈을 마련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 부모님들의 자식사랑이 고귀하지만 뼈아프게 다가왔다.

군락을 이룬 꽃은 멀리서 볼 때는 넘칠 듯이 가득해보였다. 가까이 가니 소담스럽지 않고 좀 허전해 보였다. 고목나무 등걸에 가지를 뻗고 눈(雪)의 결정체 같은 가녀린 모습으로 매달려 있는데 엉성해 보인다. 꽃의 빈 공간을 햇살이 채워주고 있어서 그나마 산수유가 빛을 발했다.

산수유 마을에 20여 호 있다. 주민들이 직접 농사지은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서 국수와 함께 판매하고 있다. 산수유를 수확하는 대신 할머니들이 국수를 삶는다. 두꺼운 손과 굽은 허리로 국수를 삶고 투박하게 고명을 얹는다. 젊은 사람들이 없다. 그러다보니 국수 한 그릇 먹으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혼자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기운은 쇠잔해졌을지라도 함께 하기에 용기를 냈을 것이다. 산수유 열매 씨를 발라 자식들 학비를 댔던 그 정신으로 지금은 마을을 위해 굽은 허리를 펴지 못한 채 또 그렇게 일을 하신다. 힘들어 보이는 데 얼굴은 산수유 꽃처럼 환하다. 혼자가 아니기에 저런 표정이 나오리라. 군락을 이룬 산수유 꽃처럼 함께하는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산수유 꽃을 보다가 사람 사는 모습도 이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낼 때는 좋아 보이고 아무 문제가 없다가도 가까이 지내다보면 단점이 드러나면서 허물이 보인다. 좋아보였던 것들이 더 이상 좋아지지 않기도 한다.

함께 간 친구가 하소연을 했다. 강산이 한 번 변할 정도의 시간을 피붙이처럼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있었단다. 가족이 서로 왕래할 정도로 서로를 위하는 마음도 각별했는데 정확한 이유를 모르고 멀어졌다며 답답해했다.

서로 거리를 두지 않고 가까이 지낸 것이 이유였을까. 긴 세월동안 함께 인연을 맺었다면 어떤 잘못도 이해 할 수 있었을 텐데. 친구는 벽을 허물고 만난 사이이기에 상처가 깊게 난 것 같다. 나는 인연이 다 되어서 그럴 거라는 허망한 위로 밖에 할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산수유 꽃에게 경고장을 받았다. 노란 산수유 꽃이 아름다운 사이는 언제나 거리를 유지하는 거라고 한다. 마음만 통하면 벽을 허무는 나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라며 강한 펀치를 날린 것이다. 자연은 늘 나에게 충고를 해주었지만 난 늘 귓등으로 흘려들었던 것 같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람을 대한다는 게 얼마큼의 거리일까. 멀지도 가깝지도 않는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하려면 얼마의 거리가 필요한 걸까. 수학 공식처럼 계산할 수 없을까. 적당한 거리를 알면 살기 편할 텐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