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들
엄마와 아들
행복의 뜨락
  • 박윤희
  • 승인 2016.06.10 1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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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윤희 수필가.

친정집에 가면 나의 자그마한 사진 하나가 걸려 있다. 짧은 커트 머리에 한복을 입고 있는 나는 지금 보니 촌스럽기 그지없다. 그래도 친정엄마는 예쁘다며 거실 벽에 걸어 두셨다. 그 사진은 고등학교 시절 예절교육을 받는다고 생활관 실습을 하던 날 부모님들이 학교에 오셔서 그동안 배운 예절을 보여 들기 위해 큰 절도 하고 다도 하는 모습도 보여 드렸을 때 찍은 사진이다.

모든 행사가 다 끝나고 '부모님의 은혜' 노래를 부르는 데 눈물이 났다.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울컥했던 게 그 때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엄마라는 말만 들으면 가슴이 먹먹하고 울컥하는 것은 왜 일까?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있는 나지만 친정엄마 앞에선 난 늘 어린 막내딸인 것 같다.

얼마 전 아들이 군대에 갔다. 남들이 나를 볼 때마다 “아들 군대 가면 어떻게 해? 걱정되겠네. 슬프겠네." 말을 건네지만 그 때까지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육군훈련소에 데려다 주러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나섰다.

아들 친구 녀석들이 넷이나 따라가서 차가 꽉 찼다. 친구 군대 간다고 만사 다 제치고 따라나서 주니 고맙기도 하고 아침 일찍부터 데려가려니 미안하기도 했다. 친구들과 함께 라서 그런지 나들이라도 가는 듯 즐거워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군대 가는 거 맞아?'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논산 훈련소가 가까워오니 기분이 묘했다. 일찍 출발해서 그런지 시간 여유가 있었다. 11시쯤 이른 점심을 먹고 부대 안으로 들어가 차를 세웠다. 여기저기 빡빡 깎은 머리의 훈련병들이 보였다. 부대 안에는 일찍 온 훈련병과 가족들을 위해 작은 음악회 공연을 하고 있었다.

노래자랑을 하면 전화 1회 이용권을 준다는 사회자 말에 아들 녀석이 노래 신청을 했다. 평소에 음치라고 생전 노래 부르는 것도 본 적 없던 아들이 전화 이용권에 용기를 냈다. 그 때까지 아들의 표정은 밝고 신이나 있었다.

오후 2시가 가까워지니 연병장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훈련병들의 집합 방송이 나오고 아들과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가슴이 찡하고 울컥했다. 2000여명의 훈련병 속에 묻혀있는 아들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입소식은 20분 정도로 짧게 끝났다. 마지막으로 연병장을 돌고 들어가는 훈련병들 틈에 끼어 있는 아들을 찾느라 기린 목이 될 정도였다.

거의 마지막 차례가 될 쯤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들은 우리를 보더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방금 전까지 나들이 나온 어린 아이처럼 신이 났던 아들은 잔뜩 겁먹은 표정을 뒤로하고 멀어졌다. 돌아오는 내내 아무 말도 없이 차창 밖만 바라보았다. 그 날 밤 밤새도록 악몽에 시달렸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부모들이 자식 걱정을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아들이 군대 간 이후로 가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날이 많아졌다. 날씨가 더워도 아들 생각, 비가와도 아들 생각, 자다가도 문뜩 깨면 아들 생각이 먼저 난다. 모든 일들이 아들과 연관 지어 생각하게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아들 군대 갔지? 기분이 어때? 많이 울었어?" 난 그저 미소만 지었다. 이젠 아들이란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울컥하여 대답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하고 울컥했던 내가 이젠 아들 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핑 돌고 울컥하는 것을 보고 '나도 부모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의 사랑을 자식이 모르는 것처럼 나 역시도 몰랐다. 친정엄마 앞에선 아직도 철부지 막내딸이지만 군대 가는 아들 앞에선 나도 부모였다.

부모의 심정을 겪어보지 않고는 모른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지만 부모의 심정이 되고 나니 그 말의 뜻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오늘처럼 비가 오고 궂은 날에는 아들 생각이 더 나는 것을 보니 나도 어느 새 자식 걱정하는 부모가 되어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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