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관계
행복의 뜨락
  • 이혜숙
  • 승인 2016.04.07 09: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혜숙 수필가.

늦가을 비가 내린다. 지독히도 가물었던 지난여름을 보상이나 하듯 연이틀 쉬지 않고 내린다.

문인협회 대선배님들과 후배들이 부안으로 문학기행을 가는 길이다. 문인협회 일원이 되고부터 알고 지내는 분도 있고 처음 보는 분들도 있다. 어른 선배님들은 조심스러워 힘들고 새로 온 분들은 아직 낯설어서 어렵다. 어색함에도 글을 쓴다는 공통분모 하나로 함께 하는 자리다.

관계. 참 어렵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오래가려면 어떤 방법이 필요한 걸까.

누구나 처음 만나면 어색하고 조심스럽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서로를 알고 나면 거리가 많이 좁혀진다. 조심스러움이 누그러지면서 격의가 없어진다. 상대를 위하는 마음에 간섭하게 되고 네 일 내 일이 없어지면서 지켜야 할 경계선을 허물어진다.

한국사람 특유의 친화력은 적당한 거리유지가 되지 않는 것 같다. 포항 살 때의 일이다. 병원에 가는데 어떤 여인이 내 등을 살그머니 치더니 혹시 ㅇㅇ아니냐고 묻는다. 자세히 보니 어릴 적 모습이 남아있는 내 친구였다. 날씬하던 친구는 넉넉한 몸집의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친구는 내가 오래전에 포항에 터를 잡은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청주에서 결혼해서 부산으로 갔는데 남편이 포항으로 직장을 옮겨 이사하면서 나를 찾았다 한다. 코흘리개 때 이어진 인연의 친구는 다시 만나면서 더욱 진한 우정을 나누었다.

나의 별난 성격도 잘 맞추어주고 사업을 하느라 바쁜 중에도 김치를 담가주고 술 마신 다음 날 술국까지 끓여다 주는 가족이 되었다. 이번엔 내가 포항을 떠났다. 서로 헤어진 지 15년이 지났다. 일 년에 한두 번 포항에 가는데 욕실에는 내가 쓰던 칫솔을 그대로 두었다가 내어준다.

약속 없이 찾아가도 내 집처럼 편하게 해 주는 친구. 세상에 둘도 없이 행복을 주는 친구가 되었다. 내 생에 가장 성공한 아름다운 관계일 것이다. 새로 터전을 잡은 대소에서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러나 떨떠름한 사람도 있다.

이해부족으로 좋았든 사이가 어그러지고 소원한 사이가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서로의 감정에 골은 더 깊어 갔다. 내가 자기한테 어떻게 했는데 저러나 하는 서운함이 마음속에 자리했다. 모든 것이 다 상대의 탓인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종지 같은 속 좁은 나의 이기심 때문인 것을 알았다. 사람은 자기가 타고난 그릇의 크기대로 사는 것 같다. 넓고 깊은 그릇의 마음이었다면 서로 상처 내지 않고 잘 지냈을 것이다. 이해하려고 마음을 열었지만, 깨진 그릇은 붙여도 자국은 남듯이 서먹할 때가 많다.

관계 중에는 태어나면서부터 이어진 혈연관계가 있다. 더없이 소중한 인연으로 만난 사이다.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며 제 살을 깎아 줘도 아깝지 않은 게 혈연관계일 것이다. 그만큼 자기 자신의 신체 일부처럼 소중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피로 이어진 사이라고 다 좋은 관계 속에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부모가 자식을 해치고, 자식은 부모를 도외시한다. 물질 만능이 빚어낸 현실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사람은 끝없는 관계 속에서 산다. 자연, 동물, 미물, 사람. 그중에 가장 어려운 관계가 사람이 아닐까.

사회적 동물인 사람이 사는 곳에는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또래의 이기주위와 함께 떠오른 문제가 왕따다. 핵가족이 되면서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배려보다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 같다. 성적 위주의 교육만 추구하다 보니 인성교육이 뒤로 밀리면서 오늘의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서로 다른 인격체가 하루를 함께 했는데 어느 만큼의 공감대가 형성되었을까. 기백과 순백의 높은 정신의 문학을 추구하는 분들이니만큼 사람 냄새나는 글쟁이의 아름다운 관계가 되었을까. 정말 어렵고 힘든 관계가 아름다움으로 승화되기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