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추억
두 가지 추억
행복의 뜨락
  • 강희진
  • 승인 2016.03.23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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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희진 수필가.

모 방송국 프로인 '진짜 사나이'에서 기존 멤버인 남자 대신 여자 연예인들이 군대에 들어가 체험하는 방송이 나오고 있다. 그중 특히 제식 훈련을 하는 것을 보면서 중학교 시절이 떠올라 추억 속으로 빠져 들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고등학교와 붙어 있었다. 고등학교는 신설 학교라 한 학년에 한반 씩 뿐이었다. 그래서 중학생인 우리까지 교련시간에 받는 외부사열검사를 받았다. 오후 수업을 중단하고 흰색 체육복 바지에 검은색 교복 상의를 입고 운동장에 나가 열을 맞추어 “좌로 돌아 가" “우로 돌아 가" “ 발맞춰 가" “뒤로 돌아 가"를 연습했다.

행진 후에는 허리에 손을 얻고 '진짜사나이' 군가를 부르면서 끝냈다. 1등을 하면 상금도 있어서 어린 마음에 반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했다. 중대장(반장)의 구령도 한몫을 해서 반장들은 목이 쉬지 않으려고 날달걀을 먹기도 했다. 그러니 텔레비전에서 여자 연예인들이 우왕좌왕하는 게 어처구니가 없고 한편으로 시대의 차이점을 느꼈다.

어제 아이들과 '명량' 영화를 봤다. 이미 이슈에서 멀어진 영화라 그런지 아니면 심야시간대라 그런지 우리 일행만 영화관을 차지했다. 호 불호가 분명했던 영화였는지라 아이들과 나와도 감상평이 확연히 달랐다. 하지만 나라사랑하는 마음하나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던 위대한 지도자 이순신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 중학교시절 이순신장군의 첫 발령지였던 고향 앞바다와 오버랩 되었다. 이순신 장군이 임란 발발 10년 전 인 1582년 36세의 나이에 첫 수군 만호로 부임해서 18개월 동안 근무했던 곳이 바로 전남 고흥의 옛 지명인 흥향현 발포진이었다. 그곳에 발포 역사 체험관이 있는데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곳이다.

4월 28일은 또 충무공 탄신일이다. 그 날은 고흥 주변의 초, 중, 고등학생이 모여 기념행사를 했다. 우리들은 흰 체육복 바지와 검은색 교복 상의를 입고 학교에서 4킬로가 넘는 거리를 행군했다. 4월 말이면 더워지기 시작할 때라 가다 보면 힘들고 가끔은 낙오자가 생기기도 했으나, 우리는 그 때 끝까지 가야 되는 행군의 의미를 터득할 수 있었다. 갈증이 나도록 지쳐도 어떻게 해서든지 행군을 마쳐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지배했던 것이다.

또 하나 추억이라면 통일된 단체복이었다. 그 날 참석하는 중고등 학생들은 검은색 상의와 흰 바지를 입었다. 단체 활동에서는 통일감과 정갈함을 주어 참 보기는 좋았는데 사고가 많이 났다. 초경을 시작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흰색 바지는 치명적이었다. 소풍을 가든 행사를 하든 체육시간이든 꼭 한 두 명은 붉은색을 묻혀 얼굴을 붉히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중학교와 고등학교 6년을 흰색바지를 체육복으로 입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비록 중학생이었으나 우리의 교련사열은 곧 전쟁터를 향해 가는 실제 상황을 전제로 했다. 내딛는 발걸음에도 절도가 있어야 했고 바로 그 엄숙한 군율에 따라야 했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우리로서는 짜증스러웠다. 그럴 때 친구들이 초경을 묻히는 걸 보고 잠깐 실소하면서 긴장감이 완화되기도 했던 것 같다.

교련 시간 때 찍은 사진을 꺼내본다. 흑백 사진 속에서 앳된 소녀들이 수줍게 웃고 있다. 교련시간의 제식 훈련을 통해 그들이 가리키고자 했던 집단정신과 절도와 규율을 우리가 받아 들였는지는 고개가 갸웃해진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 4월 28일 이순신 장군의 생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릴 적부터 가르치고자 했던 나라 사랑의 세뇌는 효과를 본 것일까? 아득히 멀어졌던 중학생 시절의 기억과 함께 하루 종일 고향 앞바다가 영상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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