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산
부용산
행복의 뜨락
  • 서민웅
  • 승인 2016.02.29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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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민웅 수필가.

올해의 첫 산행은 산 모양이 연꽃처럼 생겼다는 고향의 부용산(芙蓉山)이었다. 예순 살이 넘은 쌍봉초등학교 선후배 열 명이 모인 산모임, 칠팔 년부터 한 달에 한 번꼴로 전국의 산을 두루 섭렵해왔다.

1960년대에 내가 다닌 무극중학교 교가는 이렇게 시작한다. '부용산 돋는 햇빛 가슴에 안고~'. 중학생 때부터 한 번 가보지 못한 산이었지만 부용산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았다.

어떤 신령스런 기운이 어린 산, 나에게 굳세게 힘을 주는 산, 우리의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산 같았다. 어쩌면 한국인이 백두산을 영산으로 생각하듯이.

금왕읍 소재지를 벗어나 육령리 방향으로 들어섰다. 고속도로 공사로 산이 잘린 땅 위에 만들어 놓은 경사로 철제 계단이 가팔랐다. 계단 끝에 올라 숨을 들이쉬며 내려다보니 금석 저수지가 한눈에 보이고, 4차선 국도와 고속도로의 음성 나들목 모습이 대단하다. 산속이 교통요충지로 변한 듯한 느낌을 준다.

능선이 이어져 오르는 십리 길 대부분은 완만해서 걷는 발길이 마냥 가벼워 참살이 코스라고 할까. 그러던 길이 정상 가까이에서는 제법 경사가 심해서 숨을 몰아쉬며 올라야 했다. 해발 644m인데 산책하듯 정상에 오르게 할 수야 없지 않겠느냐는 듯하다.

산에는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떡갈나무 같은 참나무들이 꽉 차 있고, 소나무 군락이 여기저기 자리 잡아 울창한 산세를 자랑하고 있다. 어릴 적 주위 산은 봉우리나 골짜기에 풀 한 포기 없어 풀씨와 싸리나무 씨를 뿌리던 민둥산이었다. 지천으로 널린 땔감을 보니 반 백 년의 세월이 길긴 길었나보다.

정상 근처는 큰 굴참나무와 소나무가 지키고 있다. 부용산 정상표지석 옆에 산행일지를 보관하는 녹슨 철제박스가 눈길을 끌었다. 약간 습기를 먹은 방명록에 쌍봉 시니어 산모임이라 쓰고 그 아래 회원 이름을 모두 적어 넣었다. 날씨가 맑아 건너편에 솟아 있는 가섭산이 우리를 부르는 것 같다.

사정리 방향 하산로는 가팔라서 낙엽에 발이 미끄러져 구르지 않으려 조심해 발을 옮겼다. 아직 보호 난간이나 계단 시설이 없이 밧줄을 나무에 매어 놓아 이것을 잡고 조심 또 조심해서 한참을 내려오니 산길이 편해졌다.

무극 저수지가 바라보이는 국도변, 아담한 식당에서 고향 후배가 점심상을 준비하고 우리를 기다렸다. 식탁에는 철갑상어 매운탕이 이미 끓고 있었다.

철갑상어는 후배가 며칠 전 강원도에서 특별 주문해 왔고, 그곳 철갑상어 식당에서 조리방법을 배워 매운탕이 제맛을 내도록 준비했다고 한다. 이런 후배의 깊은 배려가 고마웠다.

올 첫 산행은 고향에서 흙을 밟고 나무를 만지며 피톤치드를 품은 공기를 마셨다. 비록 이름난 산은 아니지만, 나에겐 어떤 산보다도 좋았다. 거기에 환대해주는 후배가 있으니 고향을 떠난 지 반 백 년이 넘었어도 이곳이 내 고향이 틀림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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