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연습
이별연습
행복의 뜨락
  • 한기연
  • 승인 2015.11.2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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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수필가.

낮게 내려앉은 구름사이로 비가 내린다. 일요일 오후 수업을 하러 가는 길이다. 사정리저수지길을 돌 때마다 산자락에 물드는 단풍을 천천히 보며 가는 즐거움이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따라 비에 젖은 색색깔의 낙엽이 처량해 보인다. 아마도 아침에 큰아들의 전화를 받지 못해서 그런것이리라.

올해 2월에 큰아들은 징병검사를 받았고 오랫동안 앓았던 중이염으로 인해 현역으로는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보충역 대상이었는데 느닷없이 산업체로 가겠다며 근처에 이력서를 넣었다.

선택한 대로 3월부터 금왕에 있는 산업체를 가게 되었고 월급은 고스란히 적금을 들어 주었다. 해보지 않던 일을 야근이며 특근까지 힘든 내색없이 잘 견뎌서 인턴 생활 3개월을 끝내고 6월부터 병역근무가 인정되었다.

신병교육통지가 나오고 드디어 10월 19일 증평 37사단으로 한달간 신병교육을 받으러 갔다. 남편이 함께 가 주었는데 입소하기 전 긴장하더라며 안쓰러워했다. 첫 날 아들이 알려준대로 인터넷 카페에 가입했다.

하루밖에 안 됐는데도 걱정이 되었다. 평소 큰아들과는 성격도 비슷하고 좋아하는 음식도 비슷해서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늘 곁에서 끼고 있던 아들이라 그리움도 컸다. 잠자리에 들면서 '상영이 보고싶다'라며 혼잣말을 내뱉기도 하고 눈물도 닦았다.

그렇게 첫 주는 하루 하루가 더디게 갔고 인터넷 편지를 쓰면서 보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3주째 일요일이 가고 있다. 다음주 금요일은 수료식이다.

올해 스무살 성년이 된 아들이 한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훈련병교육도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4주라는 시간이 아들에게도 잊지못할 기억이겠지만 내게도 아들의 독립을 생각해 보게 하는 순간이었다.

고3때 대학선택을 스스로 하면서부터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지만 나는 아들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너무나 사랑하기에 품에서 놓고 싶지 않았지만 그때부터 아들은 자신의 꿈을 향해 독자적 길을 가고자 했으리라.

나를 잘 아는 친구는 '너는 며느리 시집살이 시킬 시어머니'라는 독설을 서슴없이 내뱉기도 했었다. 나는 강하게 부정했지만 내심 '그럴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런 시어머니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들을 품에서 떠나보내야겠다.

4주간의 이별동안 자식의 인생을 오롯이 지켜봐 주고 아들의 독립을 인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뭇잎이 비에 젖어 떨어진다. 일주일 뒤 아들은 어떤 모습으로 부모앞에 돌아올까?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저 나무처럼 세상속에 다시 제 자리를 찾아서 우뚝 설 아들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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